[책에서 찾은 길] 시대와 불화하는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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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즐거움/최영철

변방의 시인은 시대와 불화하고 쓸쓸하다. 그 쓸쓸함은 낭만이 아니라 곤궁과 절박함이다. 백석문학상 등 중심이 그 문재(文才)를 인정하는 많은 상을 탔지만 변방의 시인은 결핍이 일상이다. 그러나 시인은 '상실과 결여를 씨앗으로 피어난 꽃'인 시를 놓을 수 없다. 모든 중심이 막연한 희망을 노래할 때 그 중심의 파국을 경고한다. 그러니 중심과 더 어긋날 수밖에 없다. 왕조의 중심이 썩어 갈 때 스스로를 유폐시킨 중세 사림의 고통이 재현되고 기개가 전승된다. 변방의 시는 '견디며 흔들리고 견디며 꽃피고 견디며 울부짖는다'. '목이 메이는 복날'의 쓸쓸함을 견디며 시대의 아픔을 명징한 시어로 내뱉는다. 변방의 고통을 전복(顚覆)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절창(絶唱)은 따뜻한 시론이자 통렬한 시론이다. 중심은 시대를 유지하였지만 변방은 시대를 변화시켜 왔다.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본질을 직시하는 변방의 시는 징비(懲毖)요 구원이다. 그러나 그 높고 쓸쓸한 고통의 희생으로 말이다.

가혹한 사실은 역사의 변화가 한 시대와 불화하는 쓸쓸함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 같은 변방에서 고통받은 성인이 그러하다. 당시 변방의 언어였던 영어로 문학혁명을 이뤘던 셰익스피어, 가깝게는 변방에 바탕을 둔 오르한 파무크의 빛나는 작품은 변방이 어떻게 문학예술사에 기여하는가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중심에서 물질과 지식생산을 맡는 자와 변방에서 영혼의 치유와 성장을 맡는 자가 격조 높은 조화를 이룰 때 그 사회는 인류 정신사의 역사적 시기를 이룬다. 이방인 예술가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하는 페루의 일상은 어떤가. 시인이라는 이유로 집세를 할인해 주는 스페인의 문화는 에피소드일 뿐인가. 항산자(恒産者)는 예술가를 배려하고, 예술가는 항산자의 영혼을 치유하는 사회는 이상향일 뿐인가? 그날이 올 때 변방의 침울한 적요(寂寥)가 호젓한 소요(逍遙)가 되리라. 성인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많은 것을 가진 자'. 변방의 시인이여, 예술가여.

김형균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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