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우뚱 오피스텔을 바라보는 기초전문가의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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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래 지하공간개발연구소 소장 ㈔ 미래건설포럼 사무총장

요즘은 적폐라는 용어가 자주 인용된다. 지난 시기에 저질러진 잘못된 정치적, 관료적 행위에 해당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부산 사하구의 기우뚱 오피스텔을 평가한 어떤 언론이 건축적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았다.

우리 지역에서 30여 년 동안 기초, 지반 분야에 종사해 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또 일어난 것에 대해 심히 안타깝고 또 부끄럽다. 영도 도개공 아파트가 전면으로 기울어 한동안 시민들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걸 기억하는 시민이 아직 많을 텐데 또 이런 일이 생긴 게 한심하고 서글플 뿐이다.

바다에 교량을 건설하는 기술도, 센텀시티·마린시티의 그 웅장한 고층건축도 다 우리 건설기술자들이 이룩한 성과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오피스텔 하나가 기우는 걸 막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정상적인 또는 철저한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충, 비상식적인, 오직 경제성의 논리로 유지되는 그런 조직이 공존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기우뚱 오피스텔은 후자가 만들어 낸 도시의 부끄러운 표상이 된 듯하다.

우리 부산지역에는 해안과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도시의 특성상 다수의 연약지반이 존재한다. 이런 기본적인 조건은 건축이나 건설에도 당연히 또 충분히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다. 지하수의 흐름이나 인접 건물의 추가 시공 등도 당연히 검토사항이다. 지금 와서 그런 이유로 오피스텔이 기울었다는 게 참 핑계치고는 궁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때 아픈 증상과 응급상황에 맞게 동네병원에서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적절한 선택을 통해 치료방법을 선택한다. 건축물도 기초, 골조, 마감 등으로 분야별 전문가가 있고 설계, 해석, 시공방법도 업체도 다 다르다. 종합병원이 있듯이 종합건설이 있고 전문의가 있듯이 전문건설이 있다. 이런 시스템적인 제도와 행정기관을 통한 기본적인 허가기능이 살아 있는 지금의 제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이런 뜬금없는 사고가 생길 때면 대부분의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건설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한꺼번에 매도되고, 나아가 건설인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져 도시를 대표하는 멋진 교량이나 도시철도, 대형 건물들이 가진 건축적, 토목적 가치를 깎아내리는 게 아닌가 안타깝다.

늘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성과물을 만드는 건설은 자연 앞에 겸허해야 하고 자연현상에 민감해야 하며 또 자연에 순응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자연에 역행하는 순간 치명적인 재난을 발생시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설은 늘 자연이 주는 교훈과 원리를 지키면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산업인 것이다.

부산은 산지와 매립지로 구성돼 수많은 비탈면과 넓은 연약지반을 가진 도시이면서도 350만 인구가 생활하는 도시로서 재난은 피할 수 없는 자연조건 속에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도시 안전이자 재난예방의 가장 기본이라고 하겠다.

대부분의 건설전문가는 이런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할 기술과 다양한 경험 속에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도시 부산을 건설해 왔다. 한편 이런 형편없는 일이 생길 때까지 정상 시스템의 접근이 무시되었다는 게 이 시대, 이 도시에서 기초와 자연지반을 다루는 일을 오랜 시간 해 온 필자가 전문가적 책무를 소홀히 한 게 아닌지 자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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