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축제' 준비 7일간의 기록] 저절로 피는 꽃이 아니다 땀으로 피워 올리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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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에 연습이란 없다!'는 그 말은 제13회 부산불꽃축제 준비 현장을 일일이 돌아보기 전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 상황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돌발 변수까지 마지막 한 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순간까지도 불꽃축제 관계자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100만여 명이 지켜보는 일 년 중 단 하루 그날을 위해 1년을 달려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 달간 바짝 매달리거나 마지막 일주일로 승부수를 띄우는 이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만든 축제였다. 물론, 불꽃축제 당일까지도 '불꽃 한 발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그만한 예산을 쓸 필요가 있느냐' '교통 체증은 어쩔거냐!'면서 항의성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욕설부터 퍼붓는 시민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많은 시민들이 제법 쌀쌀한 가을밤에 몰려나와서 불꽃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하나의 생활 문화라고 친다면 불꽃축제라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알아보고 싶었다. 부산불꽃축제 D-7일부터 행사 개최 당일 자정까지의 기록을 지면으로 전한다.



축제 5일 전 화약 부산 반입
화약량만 총 5.2t에 이르러

해경 등 관련기관, 안전 대책 비상
해상 안전도 육상만큼 만전 기해

광안대교 상판 화약 설치 작업
세찬 바닷바람과의 치열한 사투


■D-7, 7부두에선 현장 작업 시작

23일 충청북도 보은군 ㈜한화 보은사업장을 출발한 화약류가 부산항 제7부두에 반입되면서 실질적인 불꽃축제 준비는 시작됐다. 부두 작업장에 컨테이너를 배치하고 화약을 운반할 바지선 정비가 시작된 걸로 치면 D-7일인 지난 21일부터. 예년 같으면 화약 설치 작업은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이뤄졌겠지만 한·미 해군 해상연합훈련에 참가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이 부산에 들어오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체 부지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7부두라도 확보돼 다행이었지 행사를 주관한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의 근심은 컸다.

23일

제7부두에선 각종 불꽃 화약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초청불꽃쇼`로 선보이는 이탈리아 관계자도 보인다.
23일 오후 부산 남구 우암동 7부두 현장을 찾았을 땐 메인 바지선, 대형 바지선, 3Point 바지선 등 총 7대에서 '타상 불꽃'(직경의 크기에 따라 개화되는 고도, 개화직경이 달라짐·3~25인치가 있음)을 발사하기 위한 발사포에 화약을 장전하고 장치불꽃을 위한 치구(장치불꽃 제품을 발사하기 위한 구조물)를 결속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총 12대의 바지선을 한꺼번에 접안하지 못해 순차적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현장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 부두 작업자만 해도 화약 설치와 경비 인력 등 80여 명. 인천에서 왔다는 황일선(61) 씨는 한화에서 4년 전 정년퇴직을 했지만 화약 취급 업무 숙달자로서 다시 현장에 나왔다. 현장에는 황 씨 같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 화약 냄새는 분명 아니었는데 1시간 남짓 부두에 머무는 동안에도 목이 아플 정도로 먼지가 많았다. 한화 협력사인 ㈜파시컴 소속 정영호(43) 씨는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작업이라 힘든 부분도 있지만 불꽃쇼는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타상 불꽃 25인치가 입고되는 날 다시 부두를 찾기로 하고 일단 현장을 빠져나왔다. 25인치는 500m 상공으로 올라가서 400m 직경으로 터지기 때문에 국내에선 부산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다.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선 12인치가 가장 크다. 총발수로는 8만981발의 부산보다 약 10만 발에 달하는 서울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지만 총 화약량으로 따지면 부산이 5.2t, 각종 장치까지 총량이 37.5t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바다에도 길 필요…해상안전 대책 회의
23일

부산해양경찰서에서 열린 부산불꽃축제 해상안전관리 대책 회의엔 3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영도구 부산해양경찰서 2층 소회의실. 부산불꽃축제 해상안전관리 대책 협의회가 열렸다. 박세영 서장까지 참석한 이날 회의는 항만 관련 기관 및 단체, 각 여객 선사 등 관계자 30여 명이 모였다. 통상 광안리 백사장과 이기대, 마린시티 방파제 등에 모이는 육상 관람객만 떠올렸는데 바다에서 불꽃축제를 관람하는 여객선(3척), 유람선(12척), 요트·보트(170여 척) 등 총 180여 척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했다. 행사 당일 광안대교 상판에서 내려다본 해상은 형형색색의 불꽃 못지않게 환하게 불을 밝힌 크고 작은 배들로 장관을 이루었지만 안전사고 방지 등 이를 관리해야 하는 해경의 고충도 상당해 보였다. 이날 동원된 경력만 해도 경비함정 15척 등 200여 명에 달했다.

부산해경 하병철 경비구조계장은 "유람선은 부산뿐 아니라 여수 울산 통영 등에서도 찾는다"면서 "유람선은 그나마 질서 있게 움직여서 괜찮지만 작은 레저보트나 요트 등이 무분별하게 움직이면 선박 충돌 사고의 우려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와 효율적인 입출항 안내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불꽃 발사 전 광안대교에선 무슨 일이…
24일

광안대교 상판 갓길을 따라서 약 1㎞ 구간에 임시로 설치한 30개의 구조물에 각각 2개씩의 조명기기를 달고 있다.
다음날인 24일 오후 10시 광안대교 상판에 올랐다. 밤바람이 거셌다. 부산의 조명업체 '트윈스라이팅' 소속 직원 7명이 약 1㎞ 구간에 60개의 조명기기를 설치하고 있다. 최영락(43) 부장은 "콘서트 조명 설치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조명기 개수의 문제가 아니라 바람도 세고 차도 쌩쌩 지나다니는 등 광범위한 작업 환경에서 일일이 걸어 다니면서 하는 작업"이라고 애로를 전했다. 조명기가 달리는 30개의 구조물은 '스테이지 주형' 직원들이 나와서 설치 중이었고, 교통 통제 등 경호팀은 '세계경호' 직원이 맡았다. 이 작업은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다.

불꽃축제 전반을 관리하는 광안리 상황실도 이날부터 가동됐다. 축제조직위 박상언 사무처장과 박용헌 기획실장, 김기웅 불꽃축제팀장 등은 이날부터 광안리 인근에 숙소를 잡고 합숙을 시작했다.

25일엔 오전 6시부터 광안대교 상판 3·4차선에 대한 1단계 교통 통제를 시작했다. 7부두 화약이 5대의 바지선에 실려서 광안대교 인근으로 운반되기 시작됐다. 무동력 바지선은 움직이는 데만 여러 시간이 걸렸다. 행사 당일까지 10대의 바지선이 광안대교 앞바다에 도열했고, 1대는 이기대 쪽, 나머지 1대는 마린시티 쪽 동백섬 해상 일원으로 배치됐다.
26일

광안대교 하판 교각 아래에선 `컬러이과수` 불꽃 연출에 쓰일 치구와 화약 결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6일 오후 4시 다시 광안대교를 찾았다. 이번엔 하판으로 향했다. '컬러이과수' 불꽃에 쓰이는 치구와 화약 결합 작업을 현장에서 한 뒤 교량 청소 때 사용하는 점검대차를 타고 옮겨 가면서 광안대교에 달아매는 작업을 마친 '파시컴' 관계자를 만났다. '나이아가라' 불꽃은 바람에 터질 우려가 있어서 행사 당일 설치한단다.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해 11명의 팀원이 오전 10시에 작업을 시작해 7시간 만에 마쳤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생리적인 현상은 '노코멘트'라고 밝힌다. 김인성(32) 팀장은 "점검대차에서 해수면까지 45m 정도 되는 높이다 보니 발아래가 아찔하다"면서 "다른 불꽃 설치 작업과 달리 부산은 바닷바람을 견디면서 하는 고소 작업이어서 힘든 편"이라고 털어놨다.

■불꽃연출 팀 리허설과 백사장 평탄 작업

26일 오후 8시 30분, 8평이 될까 말까 한 광안리 백사장에 설치한 두 칸짜리 컨테이너 콘솔 박스 2층에선 멀티미디어 리허설이 시작됐다. 부산불꽃축제 연출을 맡은 김대화 총감독을 비롯, 조연출, 불꽃디자이너, 조명, 음향 전문가 10여 명이 광안대교 위 2㎞ 구간에 쏟아지는 조명과 다리 경관조명, 레이저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암흑 속 리허설에 열중하고 있다.

김 감독은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컴퓨터 가상 프로그램을 통해 시뮬레이션 리허설이 가능하다"면서 "부산으로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이미 열댓 번의 시뮬레이션 회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다만, 부산의 경우, 육상과 달리 해상 불꽃쇼여서 라디오기지국 송수신 방식으로 현장과의 교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르는 송수신기 점검에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25일

광안리 백사장에선 블도저와 포클레인 등이 동원된 가운데 평탄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한편 7부두와 광안대교 위 해상교량에서 불꽃 설치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25일부터 광안리 해변에서도 새로운 작업이 시작됐다. 불도저와 포클레인 등을 동원한 백사장 평탄 작업과 1만 석에 가까운 유료 및 소외계층 좌석을 설치하는 일. 특히 백사장 확보는 축제조직위 사람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축제조직위 박 처장은 "올해는 큰 태풍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불꽃축제 개최 일자를 정할 때도 백사장이 가장 길어지는 간조 시기에 맞춘다"고 귀띔했다. 올해의 경우, 불꽃축제 행사 당일인 28일이 간조 피크라는 게 그의 부연 설명이었다.

27일 오후부턴 용호부두, 황령산, 동백섬 등 총 30곳에 외부 음향 시절 점검 등 스피커 설치 작업도 진행됐다.

다른 작업장을 뛰어다니는 사이 국내 최대 25인치 화약 설치 작업이 끝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1년에 딱 한 발, 부산불꽃축제에서만 쏘는 것이어서 포클레인을 이용해 발사포에 화약을 집어넣는 작업을 보고 싶었는데 여의치 못했다, 한화에서 부산불꽃축제를 담당하는 이장철(44) 차장도 "1회부터 13년간 부산불꽃축제를 담당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25인치 화약 설치 작업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면서 "25인치 화약을 감싸고 있는 옥피에 직원들이 각종 문구를 써넣는 등 특별한 이벤트를 펼치는 것도 어쩌면 현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대가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불꽃쇼가 끝난 뒤에도 작업은 이어지고

마침내 D-day, 28일 행사 당일이 밝았다. 강풍을 우려해 설치가 미뤄졌던 '나이아가라' 불꽃 작업도 광안대교에서 진행됐다. 오전부터 방송 중계차가 속속 도착하는 등 광안리 일대는 분주해졌다. 의경을 포함해 3500명의 경찰이 일대에 쫙 깔렸다. 광안리 바닷가 외곽으로는 해병전우회 200여 명을 비롯해 모범운전자회 한마음교통봉사단 등이 가세했다. 자원봉사자 250여 명도 곳곳에 배치됐다. 응급의료 지원엔 소방본부 외에 대한손상예방협회가 나섰다. 오전 11시 해변로에 대한 1차 통제가 이뤄지고 오후 4시엔 민락동까지 통제선이 연장됐다. 오후 6시부턴 광남로로 통제가 확대됐다. 총 23개 조직 6700여 명의 보이지 않는 힘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1회부터 13년을 이어오는 동안 큰 불상사 없이 지내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보이지 않는 힘 덕분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8시 불꽃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전, 일찌감치 광안대교 상판에 다시 올랐다. 축제조직위 박 실장이 지나가는 말로 전한 "오후 9시 축제는 끝나도 우리는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행사가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갈 시간, 광안대교 상판 끝 지점 안전거리 바깥에서 기다리던 장비 철거 및 경호업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먼코드' 윤성현(48) 대표는 "지금부터 우리는 '전쟁'입니다!"면서 경광봉을 꺼내 들었다. 화약 전문가들이 불발탄 등 최종 화약 점검을 하는 20여 분 후엔 각종 장비 철거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날따라 하판 전기케이블에 불꽃이 튀면서 잔해가 옮겨붙어 소방차가 출동하는 등 철거 작업이 지체되면서 당초 예정된 오후 9시 30분 전면 통제 부분해제 시간을 넘기게 돼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11시 이후엔 상판 역시 부분 통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나도록 장비 철수 작업이 이어졌다.

13회 불꽃축제는 이렇게 끝이 났다. 자정 이후 택시를 잡기 위해 건널목에 서 있다가 일본인 시라이시 에미(35) 씨를 만났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불꽃축제를 보러 왔는데 사흘간 부산에서 머물다가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유발 효과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불꽃축제에는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 대리 일행도 유료 좌석을 구입해서 참석했다고 한다. 매사가 그렇지만 문득 화려한 불꽃처럼 극명한 명암 대비가 있는 게 또 있을까 싶었다. 하룻밤의 꿈같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취재 중에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불꽃축제요? 모래성 쌓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허탈할 때도 있어요. 불꽃이 그렇듯 최선을 다해서 그 순간을 화려하게 빛내는 삶,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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