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따라하기' 넘어선 '부산 브랜드' 만들자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
지난 주말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세계의 영화축제로 자리를 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11년 전용관인 영화의전당을 개관하였고 올해는 용두산 기슭에 영화체험박물관을 준공하고 관광객과 영화 팬들을 맞이하고 있다. 20세기 산업사회에서는 국가경쟁력이 중요했다면 21세기 정보화사회는 무엇보다 도시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교수인 피터 듀런드는 이를 '컬처노믹스(Culturenomics)' 개념으로 설명하며 향후 도시들은 문화적 자산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도시경제 활성화에 주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부산을 비롯한 인근 지자체에서도 역사문화자산과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 사업들을 추진 중에 있다.
지난 11일 착공한 진해 해양공원의 집트랙사업은 해양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시설인데 인근 경남 하동의 금오산과 경북 영천지역에도 유사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송도에서 운행을 시작한 1.62㎞ 길이의 해상 케이블카가 부산의 관광 명물로 회자되지만 이미 2008년과 2012년 이와 유사한 통영미륵산 케이블카와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가 만들어져 운행되고 있다. 청사포 하늘전망대가 바다 위를 걸으며 해양도시의 특성을 살린 시설로 주목받고 있지만 오륙도의 스카이워크, 송도 구름다리를 함께 놓고 보면 부산의 3곳에 유사시설이 있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관광문화시설을 추진할 예정이라 한다.
곳곳에 베끼기한 관광상품 즐비
'유사 스카이워크'만 부산에 3곳
시민공원 오페라하우스 등도
외국 것 복제한 듯한 느낌 강해
부산 자연·역사에 자부심 느껴야
우리만의 독특한 것 찾아내야
이처럼 각 도시들이 자연 환경과 역사,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관광산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도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업이 타 지역을 벤치마킹한 '따라하기 사업'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업은 결국 중복 투자로 인해 경제적 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서로의 경쟁력마저 약화시켜 유지조차 힘들게 된다.
특히 도시브랜드 사업과 건축디자인 분야에서 이 같은 상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벤치마킹한 부산시민공원,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와 부산 북항의 오페라하우스, 최근에는 용산 전쟁박물관과 부산 제2전쟁박물관,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도시상징물 건립 계획에 이르기까지 따라하기는 많다.
미래도시의 새로운 트렌드를 예측하는 빅 데이터 전문가들은 '누구와 언제 무엇을 했는가'라는 보편적 장소에서의 경험보다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특정장소와 문화가 갖는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 보편적이고 흔한 장소가 아니라 독창적인 나만의 장소, 혹은 자신만의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향후 도시의 경쟁력을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그동안 부산과 인근 지역의 지자체는 독창적인 문화와 특색을 살리기보다는 서울을 비롯한 외국의 선진 사례에 대한 따라하기 사업과 디자인 복제에 안주해 왔던 것은 아닌가.
올해 초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추천한 2017년 세계여행지 도시 중 부산을 살펴보면 해답이 보인다.
공구상가에서 카페거리로 변한 전포동 일대, 디자인 카페로 변신한 백제병원 등 부산의 매력적인 장소와 공간들을 대표적 관광지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선진 사례를 통해 벤치마킹을 한 결과가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부산 지역만의 역사·문화와 디자인이 만나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신한 결과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도 봉래시장의 오래된 건물들을 활용한 삼진어묵은 어묵박물관 등과 함께 새로운 창업공간으로 변화하며 지역의 명물산업이 되었다.
최근에는 을숙도와 유사한 자연환경을 지닌 뉴욕 이스트강의 루스벨트 아이슬랜드는 친환경 공원과 친환경 건축으로 환경산업을, 네덜란드 '곱 반 자이드(Kop Van Zuid, 남쪽의 머리), 독일 '바서슈탄트(Wasserstandt, 수변도시)', 영국 '독랜드(Docklands)' 등은 수변공간을 중심으로 낙후된 시설들을 지역의 자연환경·역사문화와 연계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상하이,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에서도 해양 도시만이 갖는 문화와 역사자원을 활용한 재개발과 관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부산이 21세기 경쟁력 있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선진 사례가 남긴 결과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사업이 선진 사례가 된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 출발점은 도시부산의 자연과 역사문화에 대해 자부심과 관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