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국토대장정] 48. 울산 선바위~태화강체육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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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강을 거슬러 오르고, 우리는 물길 따라 걷고

울산 태화강 용금소 인근 산책로를 제48차 S&T 국토대장정 참가자들이 걷고 있다. 푸른 가을 하늘과 맑은 강물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 끄트머리엔 울산 태화루가 우뚝 솟아 참가자들을 반기며 기다린다.

태화강(太和江)은 평화로웠다. 해마다 연어가 돌아오는 모천. 마침 북태평양 푸른 바다 수만㎞를 여행하고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를 맞이하는 플래카드가 다리마다 내걸렸다. 영험하게 우뚝 솟은 선바위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원시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강을 따라 드넓은 하구로 향한다. '베리끝' 옛길을 지나니 십리대밭 푸르름이 여전하다. 태화강대공원 곳곳에 피어나는 가을꽃들. 모처럼 화창한 주말. 380여 명의 S&T 가족은 거친 물살을 가르는 연어처럼 힘차게 걸었다.

도보 여행에 최적화된 코스
연어 돌아오는 태화강 따라
아이도 어르신도 힘찬 발걸음

푸른 하늘·무성한 꽃밭 지나
십리대숲 사이로 '유유자적'

막걸리 한 사발에 기운 충전
"힘들다고 주눅 들지 맙시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태화강대공원에 활짝 핀 들국화.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뿜고 있는 선바위는 과연 태화강의 명물이었다. 작은 보가 물을 가두어 옛 정취는 많이 사라졌겠지만, 시인 묵객이 두루 다녀갔을 법한 절경은 여전했다. 태화강의 자연 환경과 생태 자료를 볼 수 있는 태화강생태관은 선바위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입장할 수 없었지만, 야외 전시장에 핀 각종 연꽃과 멸종위기종 가시연을 실물로 본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48차 S&T 국토대장정은 대도시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의 진면목을 볼 수 있도록 여정을 잡았다. 태화강은 길이가 47.54㎞로 울산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 울산 남구 매암동에서 동해와 만나는 울산의 젖줄이다. 한때 오염돼 생명이 살기 힘들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각고의 노력을 들여 지금은 1급수를 유지한다. 연어가 돌아오는 강이니 생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생태관에서 출발한 긴 행렬이 천천히 선바위교를 건넌다. S&T그룹 최평규 회장이 반소매 차림으로 대열을 지켜보고 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의외로 날씨가 차가워 다들 잔뜩 웅크리고 있으니 힘내라고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강을 건너 선바위를 멀리서 구경하고 다시 하류로 향한다. 아무래도 쌀쌀하여 겉옷을 꺼내 입었는데 30분쯤 걸으니 몸도 풀리고 아침 햇살까지 퍼지자 한결 나아졌다.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이제 그만 겉옷은 벗어도 좋다고 신호한다.

태화강물이 살아난 것과 동시에 지자체가 강변에 산책로와 체육공원은 물론 자전거도로까지 만들어 걷기 좋게 해놓았다. '울산은 부자 도시여서 태화강에 편의시설이 많고 공원 관리도 잘 되고 있다'는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돈도 돈이겠지만, 강을 살리고자 한 사람들의 의지도 곁들여졌으리라. 그렇게 연어는 이맘때 강을 거슬러 오르고, 우리는 물길을 따라 바다로 걸어가고 있다.

참 고마운 길입니다
십리대밭의 청정한 대숲.
이번에는 유독 가족 참가자가 많다. 지난번 남해 보리암에 갔을 때 내리막길이 가팔라 고생한 분이 많았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번에는 거리는 조금 길지만 도보 여행에 최적화된 길이라 어린이도, 연세 드신 분도 많이 보였다. S&T모티브 사전 답사팀은 전동스쿠터를 활용해 평소 다른 지역보다 답사를 한결 쉽게 끝냈다는 후문.

베리끝을 지난다. 울산 옛길 답사 동호인들이 태화강 벼랑에 난 옛길과 지명을 찾아냈단다. 절벽엔 덱 길을 만들어 강물 위를 걷을 수 있다. 베리끝을 지나자 신삼호교다. 긴 휴식 시간을 가졌다. 부서 최다 참여자인 S&T모티브 모터사업부 팀은 자축의 자리를 마련했고, 최근 난제를 해결한 S&TC는 모처럼 많은 인원이 참여해 기분 좋게 청명한 가을을 누렸다.

신삼호교를 지나자 가을꽃이 무성하다. 둔치엔 운동장도 여럿 있다. 길도 넉넉해 연인이나 가족이 손을 잡고 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엄마가 둘째를 가져 아빠와 둘이 오붓하게 걷던 네 살 김소율은 다리가 아파 아빠가 해주는 목말을 탔다. 한껏 키가 커진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돌 된 아기를 포대기로 안은 한 아빠는 엄마 손을 잡고 꽃밭에서 가족 기념사진을 찍고, 아내와 함께 온 한 종주단원은 선두 대열을 무단이탈(?)해 행복한 데이트를 즐긴다. 이 모든 것이 길이 평탄하고, 아름답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참 고맙다.

이번엔 전동스쿠터를 탄 S&T모티브 유기준 사장이 앞질러 간다. 비록 종주단장의 지위는 물려줬지만, 누가 뭐래도 대열을 지킬 책임이 있는 분. 전방의 안전을 애써 확인한 유 사장이 되돌아와 다시 성큼성큼 걷는다.

태화강대공원에 들어서자 십리대밭이 먼저 반긴다. 대숲 나들이의 훼방꾼 모기를 잡는 포집기가 곳곳에 설치돼 쾌적하다. 대숲은 공기 속의 비타민이라는 음이온을 많이 방출하는 곳. 걷는 만큼 건강이 좋아진다니 기분 좋다.

태화루엔 짜장면이 없다
태화강변에 복원한 태화루.
푸른 가을 하늘과 울긋불긋 피어나는 가을 꽃이 어울려 피었는데 어디선가 풍악 소리가 들린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 관용의 대명사 처용을 기리는 문화제 준비가 한창이다. 십리대밭교를 막 지나 만나는 샛강 다리 위에 사람들이 멈춰 섰다. 바닥이 보이는 투명한 강물에 숭어와 팔뚝만 한 누치가 유유히 노니는 것을 구경하는 참. 사람이 가까이 있는 데도 물고기는 도망가지도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함께 누리는 여유다.

물속이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닿지 않을 만큼 깊어 태화사 용들의 안식처였다는 용금소를 휘돌아 걷는다. 멀리 태화루가 보인다. 646년 지은 태화루는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2014년 울산 시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세우기 위해 복원했다. 울산이 고향인 듯한 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외지에서 온 친구들에게 태화루에 가자는 이야기를 했더니 "짜장면을 시키면 되는데 왜 가서 먹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것. 듣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태화교 아래를 지나 태화강체육공원으로 접어들었다. 동호인들의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한 중년 선수가 멋지게 드리블을 하더니 기어코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었다. '녹화 경기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경기에서 골을 볼 수 있는 일은 흔치 않다. 행운이다.' 골 장면을 목격한 이의 관전평도 멋졌다. 참 운수 좋은 날이다.

넓은 둔치 곳곳에 점심 자리가 펼쳐졌다. 태화강 십리대숲에 숨은 조롱박 터널과 들국화 평원, 수수밭까지 샅샅이 돌아보고 오느라 마지막에 도착한 최평규 회장이 왜 이리 힘이 없느냐며 시원한 막걸리를 우동 사발에 가득 부어 모두에게 일일이 돌렸다. "힘들고 어렵다고 주눅 들지 맙시다. 좀 활기차게 합시다. 내일 죽더라도 '꽥' 하는 것이 S&T 도전의 역사"라고 했다. 금세 사기가 오른 이들의 건배 구호 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드높은 파란 가을 하늘이 한층 더 높아졌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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