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4. 스와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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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향해 나아가는 대배우의 시간

스와 노부히로의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 BIFF 제공

스와 노부히로의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베르 세라의 '루이 14세의 죽음'의 영향 아래에 있을 것이다. 한때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했으나 어느덧 노쇠한 대배우 장 피에르 레오가 영화 속 영화에서 자신의 죽음을 연기해야 하는 모습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그는 죽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에 강력한 거부감을 표하는데, 죽음은 그런 게 아니라 '대면'해야 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체험하는 것'보다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문제, 죽음을 본다는 것과 체험한다는 것 사이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한계와 가능성이란 문제에 대해 세라가 아찔할 정도로 치열하게 파고들었다면, 스와는 천진난만한 모험담과 판타지적인 설정을 통해 같은 문제를 의외로 싱그럽고도 쓸쓸한 방식으로 건드린다.

쟝(레오)은 상대 여배우의 사정으로 촬영이 며칠간 중단되자 오래전 사랑했던 연인의 집을 찾는다. 그녀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린 지 오래고, 그곳에서 그를 반기는 것은 맘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녀의 허깨비와 카메라를 들고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꼬맹이들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라도 그녀와 다시 만나고픈 마음에 빈집에 머물며 아이들의 영화에도 출연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어느 여인의 환영 곁에서, 아이들이 지어낸 허구 속에서 잠시 머물게 된 그는 남다른 현존감으로 이것이 마치 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인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모든 영화가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결국 다큐멘터리라면, 레오는 다큐멘터리 그 자체다. 카메라 앞에서 그의 육신이 빚어내는 현재성은 세계영화사에서 비슷한 다른 사례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정조는 그러나 레오의 존재감에서 나오는 것도, 여인의 환영성이나 아이들의 무지함에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사이에 놓인 관객의 자리에 기인하는 것 같다. 지나가 버린 여인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의 시간, 그 사이에서 홀로 끝을 향해 여전히 나아가고 있는 레오의 시간. 이 영화의 관객은 레오의 시간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여인도 아이들도 같은 목격자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레오를 본다는 것은 누벨바그와 함께 나이 들어 온 현재 관객에게 지극히 고독하고 동시대적인 체험이다. 누벨바그의 '누' 자도 모르는 아이들과 레오가 벌이는 영화 만들기 소동이 한없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 


이후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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