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일몰제, 도시공원이 사라진다] 1. '발등에 불' 공원일몰제, 부산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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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공원 121개 규모 공공부지 난개발에 노출

푸른 숲과 청명한 부산 앞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 하지만 2020년 7월 1일 공원일몰제가 시행되기 전에 부산시가 부지 매입에 실패하면 이곳 사유지도 난개발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경현 기자 view@

2020년 7월 1일로 자동 실효되는 부산지역 공원·유원지·녹지는 5760만㎡에 달한다. 부산시민공원 121개를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공 부지가 2년 9개월 뒤에는 원래 주인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황령산 유원지, 산성 유원지, 태종대 유원지는 물론이고, 중앙공원, 어린이대공원, 동래사적공원, 금강공원, 이기대공원, 청사포공원, 함지골공원 등 시민들이 무시로 누려왔던 부산의 대표 공원과 유원지가 빼곡히 포함돼 있다(지도 참조).

실제로 이처럼 많은 공원, 유원지 등에 도시공원 일몰제가 적용돼 시행되면 시민들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자연 환경이 보존돼 있는 부산 곳곳의 금싸라기 땅들이 난개발로 얼룩지지는 않을까.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공원일몰제 시행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성토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부족한 예산에 난감해하며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본보는 앞으로 5주 동안 총 10회에 걸쳐 '도시공원이 사라진다' 시리즈를 게재한다. 먼저 가상으로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된 뒤의 '평범한 하루'를 짚어보았다.

17년간 땅값만 천정부지 치솟아
천문학적 부지 매입비 대안 없이
정부·지자체, 해법 미루기 급급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마저
대부분 아파트·레저시설 제안
개발 광풍에 결딴날 우려

■2020년 7월 1일, 그리고 한 달 뒤

'부산의 마지막 남은 천혜 자연 속 프리미엄, 놓치지 마세요.'

40대 직장인 A 씨는 출근길에 내다 걸린 아파트 분양 플래카드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2020년 7월 공원일몰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금정산, 백양산 등 부산을 대표하는 명산의 자락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기대, 청사포, 동백섬 등 수려한 해양 경관과 자연 녹지를 동시에 품은 부산만의 명소에는 전국에 체인점을 거느린 분양형 호텔과 유스호스텔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최후의 보루처럼 남아 있던 산과 해안가를 깎아 아파트를 지어대는 세태에 A 씨는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지난 주말 A 씨는 가족과 함께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 십수 년간 A 씨가 걷고 달리던 산책 코스에 흉측한 쇠사슬과 함께 '사유지 내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커다란 팻말이 나붙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어머니와의 안부 전화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늘 물을 길으러 가던 약수터 길이 커다란 철문으로 막혀 수풀을 헤쳐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방향으로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는 일을 어머니는 생생하게 전했다. 공원일몰제는 그렇게 곳곳에서 피부에 와 닿아 있었다.

개발 광풍으로 인한 집값 상승 역시 A 씨에게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지난 몇 년간 각종 부동산 규제에 잠잠했던 부산의 집값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들썩이고 있다. 공원일몰제 시행으로 건설되는 아파트들이 하나같이 '천혜 자연을 독점한 프리미엄'을 강조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분양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60대 토지 소유주 B 씨는 공원일몰제가 시행되기 1~2년 전부터 누구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일주일에 두 번씩 열리는 시청 앞 집회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참여 중이다. 부산시와 합의를 이루지 못한 공원일몰제 해당 토지 소유주 수십여 명과 함께 여는 집회인데, 이들은 늘 "부산시는 재산권 존중한 헌법재판소 결정 제대로 이행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쳐왔다.

특히 얼마 전부터 일몰제 대상이 되는 땅 일부를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집회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토지가 공원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라서, B 씨를 비롯한 여러 소유주는 집회와는 별개로 대규모 소송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으로 따지면 수백 건의 소송이 동시 다발로 진행되는 때문에 이 분야에 해박한 변호사들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B 씨는 최근 본인 소유의 땅에 쇠사슬과 팻말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을 앞세워 턱없이 낮은 금액으로 땅을 매입하려던 지자체에 대한 항의 차원이다. 준비 기간이 짧아 예산이 부족했다는 건 핑계다.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20년의 시간이 있었다. 수십 년간 아무런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금싸라기 땅을 부산시 제안처럼 공시지가 3~4배 수준으로 팔 생각은 B 씨에게 애초에 없었다. 선의를 강요할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게 B 씨의 생각이다.

■2020년 7월 1일, 앞으로 2년 9개월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2020년 자동 실효제도, 일명 '공원일몰제'는 1999년 옛 도시계획법 제4조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에서 비롯됐다.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이후 10년 넘게 예산 미집행으로 땅이 방치돼 있던 것을 문제 삼은 부지 소유주는 해당 지자체에 소송을 걸었고 결국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재산권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20년간 유예기간을 줄 테니, 정부와 지자체는 그사이 결정된 도시계획시설을 집행하고, 안 될 경우 그 결정의 효력을 없앤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7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지주들은 '그날'만을 고대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다. 일몰제 시행 이전까지 최대한 많은 부지를 사들여 당초 목적대로 공원·유원지 등으로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와 각 지자체는 올해 초부터 각종 토론회와 라운드테이블을 여는 등 도시공원 일몰제 해법 찾기에 나섰다. 부산시는 의무적 정비목표제를 도입해 매년 재정 여건을 감안, 실현 가능성이 있는 미집행 시설을 의무적으로 집행하도록 추진하는 한편,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을 시행해 부지 30%는 개발 사업에 나머지 70%는 녹지 보존에 배분하는 방식을 적용해오고 있다.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으로 매입하는 미집행 사유지는 면적 5만㎡가 넘는 도시공원 23개소이다.

하지만 예산이 담보되지 않은 의무적 정비목표제는 구호에 그칠 뿐이며,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에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들은 대부분 고층 아파트나 레저시설 등을 짓겠다는 내용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지난달 중순 기존에 일몰제 대상이었던 사유지 외에 국유지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공공재인 공원 부지를 보존하지 않고 팔겠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 산림청 등 국유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정부 부처들이 이에 동의했고, 환경부만이 반대 의견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사무처장은 "전국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매입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데, 부산의 경우 특히 대응이 늦은 감이 있다"면서 "정부, 지자체는 물론 전문가 집단들도 지난 17년 동안 효과적인 대안은 찾지 못하고 서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 식 해법 찾기에도 모자라 국유지까지 일몰제에 포함된다니 통탄스럽다"고 토로했다. 김경희·안준영·김준용 기자 miso@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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