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 3. 카우리스마키 '희망의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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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세상… 선한 의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건너편'. BIFF 제공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또다시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영화를 보는 동안 흐르는 게 눈물인지 웃음인지, 마음을 뒤흔드는 것들이 단단히 엉겨있어 그 정체가 헷갈리지만 역시나 큰 울림을 준다.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영화의 반이 설명되는 작품이 '희망의 건너편'이다. 세상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근심하는 이 핀란드 거장의 영화 세계가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진 지는 오래다. 그리고 다행히 몇몇 다른 거장들이 간혹 세상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사회적 의제에 치중하며 자신의 영화에 균열을 내는 동안에도 카우리스마키는 온전히 굳건했다.

'항구도시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르 아브르'(2011)의 불법 난민 소년 이드리사는 한없이 따뜻한 손길 안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애석하게도 유럽의 많은 항구도시들엔 여전히 또 다른 이드리사가 존재하지만, 현실 속엔 영화에서처럼 뼈를 깎아 탄생하는 판타지 같은 건 쉬이 들어서지 않는다. 많은 국가들이 난민 문제로 저마다의 치부를 드러내고, 핀란드 역시 대외적으로는 이민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듯 하지만 실상 차갑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시리아 난민 칼레드는 '희망의 건너편'으로 들어온다. 영화의 시작은 칼레드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로를 전전하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헬싱키로 흘러들어 온 순간부터다. 그러니 헬싱키는 희망의 도시여야 마땅하지만, 쉽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럴수록 우리에겐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세계가 더욱 필요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무표정한 사람들이 건조한 제스처로 술과 담배를 즐기며 잊지 못할 우정을 나누는 곳. 노동자와 보헤미안들이 질퍽하고, 때로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선한 의지를 내보이는 곳. 그곳이 그의 세계다. 그지없이 아름답고 따뜻한 세계가 아니라, 이 세상이 너무 차갑기에 조금의 온기를 보태는 곳에서 칼레드는 이라크 난민 청년과 핀란드인 아저씨를 만나 진한 우정을 나눈다. 그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담배들, 그들을 감싼 담배 연기가 마음의 증표 같고,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영화 도처에 깔려있다. 각각의 장면들도 그렇지만, 쇼트의 흐름 자체가 음악이 된 것 같은 순간들, 정말 음악이 하나의 심상을 그려내는 순간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수를 안긴다. 그리고 유머와 낭만이 빠져서야 되겠는가. 칼날 같은 현실이 마지막까지 인물들을 파고들더라도 피어나야 할 웃음은 있기 마련이다. 대단한 시네필이자, 신묘한 고전주의자이자, 하나의 브랜드가 된 거장의 작품이 '희망의 건너편'이다. 어떨 땐 감독을 향한 내 사랑이 너무 큰 나머지 신작이 의외로 좋지 않으면 세상이 떠나갈 듯 한숨을 내쉬지 않는가. 그러니 늘 고마울밖에. 


홍은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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