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블레이드 러너 2049
'인간의 존재론적 탐구' 철학적 메시지 담은 SF 걸작의 귀환
1982년 개봉된 이후,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SF 영화의 고전으로 손 꼽혀온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의 시퀄,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는 전작 이상의 감흥을 선사한다. 영화의 일반적 체험을 넘어서게 해준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대명사 보다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라고 콕 집어 말하고 싶다. 'K'라는 알파벳으로 불리던 주인공이 '조'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그렇게 불리게 되는 것처럼, 구체적인 호명은 늘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복제인간('리플리컨트')을 추적해 퇴역 처분하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는 전편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30년이 지난 2049년에 펼쳐진다. 또 하나의 리플리컨트를 처리하고 나오던 K는 집 앞 나무 밑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과거의 사건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K는 자신이 여기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출생의 전말을 캐내기 위해 30년 전 블레이드 러너였다가 사라져버린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아 간다.
전편에서 30년 지난 2049년 배경
암울한 미래서 찾은 한줄기 희망
12일 선보인 '2049'에서도 전편이 다루었던 인간의 존재론적 탐구는 계속 이어져 '인간'과 '복제인간', 즉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 '경험'과 '상상', 그리고 '진짜'와 '가짜',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어뜨리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특히, 육체가 없는 K의 연인 '조이'와 창녀 '마리에트'가 합일(sync)되는 장면은 꽤 오랫동안 묘사되는데, 두 인물의 이미지가 다 살아있으면서 하나로 보였다가 다시 미묘하게 분리되는 신비로운 영상이 이러한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 십 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2049'의 세계관은 보다 확장되어 또 다른 철학적 주제들과 맞물린다. 명령 복종을 위한 기계라는 이유로 '껍데기'(skin)로 놀림 당하던 K는 극의 후반부에서 '노예를 넘어서는'(more than slaves) 행위에 대한 도전을 받는다. "옳은 일을 하다가 죽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야"라는 복제인간의 대사가 '삶의 가치'라는 또 다른 주제를 적확하게 시사한다. 그래서 "나는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 라며 죽음의 시간을 그저 받아들이던 전편의 리플리컨트는 '2049'에서 '기적'을 보았기에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리플리컨트로 대체된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새어나온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