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 1. 왕빙 '미세스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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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풍경을 방문하다

왕빙 감독의 '미세스 팡'의 한 장면. BIFF 제공

'미세스 팡'은 줄곧 죽어가는 팡 부인의 육신을 비춘다. 생의 감각으로 오랜 세월 살아왔을 그녀겠지만, 영화 안에서 이 나이 든 여인의 생동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오프닝 장면들에서 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팡 부인의 모습이 담긴 세 개의 쇼트가 고요히 흘러간다. 그리고 잠깐의 암전 후,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클로즈업된 얼굴에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보기 좋게 살이 올라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힘없이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는 흐릿한 시선이 허공을 가르고 있다. 시기와 이름을 알리는 자막이 없었더라면 동일 인물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어떤 난처함마저 밀려온다. 얕은 지식만으로도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에 대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가 엄격한 관찰자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자신의 카메라와 대상 사이의 적정 거리를 뛰어난 직관과 노동으로 찾아내는 엄숙한 관찰자이지, 상냥한 이야기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팡 부인의 굳어가는 육신을 차마 어떻게 지켜볼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선 죽음의 문턱에 너무 가까이 다가선 팡 부인을 대신해 그녀의 역사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는 이가 없다. 가족이며 이웃들이 그녀의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관객은 그녀의 상태를 지켜보고 들을 뿐이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방문자 무리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시적인 표현처럼, 우리는 침몰하는 배와 같이 죽음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여인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위안이랄까. 낯선 여인의 죽음에 대해 과한 연민의 감정을 싣는 것도 스스로의 거짓 같고, 죽음을 둘러싼 풍경을 한 방문자의 시선처럼 포착한 장면들에 거창한 수식어를 덧대는 것도 기만 같아, 들쭉날쭉하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을 무렵, 방문자라는 연대가 묘한 위안을 안긴다.

팡 부인을 왕빙의 카메라가 담을 동안 관객 또한 한 명의 방문객이 된다. 죽어가는 자와 살아가는 자들의 모습, 그들을 둘러싼 빈한한 풍경과 강가의 정취,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박하게 소란스러운 광경을 왕빙이라는 예의 바른 방문자의 카메라를 통해 지켜봐야 할 자리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위안은 이 방문자의 적절한 자리에서 오는 것 같다. 이 자리에서 팡 부인의 죽음은 사건화되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조금씩 굳어가던 육체가 마지막 호흡을 거두는 순간을 가리킬 뿐이다. 그 순간을 맞을 때까지 지나쳐 가는 모든 순간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통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 영화를 마주하며 앉아있는 어느 곳에서 고통스럽지만 놀라운 교감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홍은미

영화평론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회원이자 부산독립영화협회가 만드는 영화비평집 '인디크리틱'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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