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톡] 발에 차이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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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면 그리던 풍경 중 하나가 함께 공연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돌쯤 처음으로 찾은 어린이 공연장에서 딸은 5분도 채 안 돼 울음을 터뜨렸다. 네 살 다섯 살이 돼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연극, 발레, 음악, 어느 장르도 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가 보다' 자위하던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아파트 단지 내 공터에서 가을맞이 거리 공연이 열리고 있었는데, 녀석이 몸으로 리듬을 타며 즐기는 게 아닌가. 어린이 공연과는 한참 동떨어진 클래식, 가곡이었다.

최근 부산대 앞에서 열린 거리예술축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찔한 줄타기 곡예 등 서커스뿐만 아니라 어른도 소화하기 힘든 난해한 현대무용까지, 가랑비를 맞으며 끝까지 지켜봤다. 무엇이 딸아이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평소처럼 산책을 나왔는데, 이런 공연을 보게 될 줄 몰랐어요." "일부러 시간과 돈을 내서 공연장에 가기가 쉽지 않잖아요." 시민들의 반응에서 의문의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공연장 방문이 '일탈'이라면 거리 공연은 '일상'의 예술이다. 딸아이도 평소 뛰어놀던 공간에서 만난 공연이라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였을 터.

거리예술의 중요성과 필요성의 공감대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서울과 경기, 대구, 광주 등 전국적으로 거리예술 관련 행사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 부산도 금정문화재단 주최로 처음 부산거리예술축제가 열렸고, 부산문화재단도 거리예술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려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원도심 '부산거리예술대첩'에 이어 이번 주말엔 중앙동 40계단에서 '거리춤축전'이 펼쳐진다.

반가운 한편 걱정이 앞선다. 이런 행사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원대의 돈을 투입해 펼치는 단발성 축제는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행사에 앞서 거리예술의 토양을 만드는 일이 먼저다. 거리예술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거리에 나설 수 있도록 작지만 꾸준히 자리를 깔아주는 일. 해외 예술가와 교류하며 역량을 키우고, 비로소 해외팀과 국내(부산)팀이 함께 거리에서 벌이는 큰 판. 2년 전 거리예술창작센터를 세우고,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거리예술축제를 훌륭히 치러낸 서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춤, 노래, 음악, 연극, 마술까지…. 이미 부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거리예술의 기본 바탕을 갖고 있다.

다시 꿈을 꾼다. 딸아이 손을 잡고 거리로 공연장으로, 때론 일상에서 때론 일탈로 예술을 만나는 풍경. 거리 공연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진지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떠올리며, 이번 꿈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길 바라본다.

이대진 기자 dj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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