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휴대폰 거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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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에서 주연보다 조연이 더 주목받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없지 않은데 그 대표적인 곳이 스마트폰 세상이다. 휴대폰 주변 기기들의 화려한 변신은 이런 느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처음엔 그저 보조 역할에 불과하더니 이제는 본체의 기능과 부가가치를 뛰어넘으려는 모습이다. 범죄를 막아 주는 전기 충격기에서 아기의 열을 재는 알람 체온기를 거쳐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저주파 치료기까지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이 가운데 휴대폰 거치대(据置臺)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한다. 최근 대학생들이 개발한 자전거 스마트폰 거치대가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소식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학생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스며든 이 상품(라이더 엑스: RIDER X)은 이미 시장에 출시돼 인기를 얻고 있다.

어떤 물건을 받쳐 놓는 장치를 뜻하는 거치대란 단어를 군대에서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소총과 연관된 이 용어가 요즘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스마트폰 때문이다. 사람이 두 손을 모두 사용해 휴대폰을 조작할 수 없을 때도 모니터를 끊임없이 볼 도구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반드시 지녀야 할 것을 빼놓는 걸 빗대는 표현도 바뀌어야 할 모양이다. "소총 놓고 전쟁에 나가냐"에서 "스마트폰도 없이 일 나가냐"라는 비유로 말이다. 이 변화가 완벽해지려면 거치대란 존재는 필수다.

이 장비가 갖는 의미도 자연히 달라진다. 군에선 소총을 거치대에 거는 행위는 곧 휴식을 뜻했다. 하지만 휴대폰을 거치대에 놓는 행위는 작업이나 행동의 연속을 의미한다. '문명의 이기'라도 몸에서 떼어 놓는 게 진정한 자유였던 인식은 과거로 흘러가 버렸다.

인간이 미래의 사이보그로 가는 징검다리가 거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몸에 붙이고 다녀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뗄 때라도 거치대를 통해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하니 이런 상상이 무리가 아닐 듯하다.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은 아톰(Atom)의 현실계와 비트(Bit)의 정보계가 융합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거치대가 그 다릿돌 중 하나가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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