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영화도 찍어 볼까?^^ 우린 70대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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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제작에 나선 어르신들이 영화제작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왼쪽부터 배부광, 현봉준, 이순분, 김태균(만세픽처스 대표), 박재석 씨. 윤여진 기자·만세픽처스 제공

"누군가는 나를 할아버지로, 누군가는 어르신으로 부른다. … 나는 노인이 아닌, 70대 청춘으로 아직은 불리고 싶다. 나는 지금 70대 청춘이니까!"

단편영화 '나는 70대 청춘이다'에 등장한 현봉준(71) 씨가 첫 장면을 열면서 한 말이다. 젊은이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어르신의 삶을 따라간 이 짧은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어르신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영상을 찍은 뒤 편집까지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도시' 부산의 힘이 응축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기장노인복지관 어르신들
대본 쓰고 촬영 현장 누비며
직접 제작한 단편영화
실버영상제 최우수상 기염

현 씨를 비롯해 박재석(80)·배부광(77)·이순분(77) 씨 등 영화 제작현장을 누빈 어르신들을 만났다. 7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이들은 부산 기장군노인복지관에서 운영 중인 은빛나래실버영상반에서 이론과 실기수업을 들으며 영화인의 꿈을 키우는 중이다. 이들의 사부 격인 김태균 감독 겸 만세픽처스 대표는 "어르신들이 새벽 5시에도 촬영에 나설 만큼 열정적이다. 무거운 장비를 옮기거나 붐 마이크를 들어야 하는 등 고된 현장에서 서로 앞장서는 모습이 본받을 만하다"며 "노인 영화라고 해서 우울한 메시지를 던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에 반영이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단편영화 '나는 청춘이다' 촬영장 모습.
영화 '나는 70대 청춘이다' 주인공을 맡은 현 씨를 영상반에 합류시킨 이는 감독을 맡은 박 씨였다. 30년간 부산서 개인 사업을 한 박 씨는 은퇴 후 서울로 올라가 노인복지관에서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영화에 조금씩 눈뜨게 됐다. 서울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에선 3년간 영상반 반장도 맡았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지만, 영화를 직접 만들기는 그도 이번이 처음이다. 박 씨는 "영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정말 재미있다"며 "김 대표 덕분에 언제라도 영화를 제작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단편영화 '나는 청춘이다' 촬영장 모습.
대형차를 운전했던 현 씨는 처음엔 영화 출연이 낯설었다고 했다. 그는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했는데, 이렇게 카메라에 담기게 됐다"고 웃음 지었다. 배 씨 역시 선박회사에 근무한 만큼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박 씨의 권유로 영상반에 들어온 뒤부터 다리 관절이 좋지 않음에도 스태프를 자청하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열정을 보였다. 10분짜리 영상이지만 에피소드도 많다. 현 씨가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몸이 건강했던 덕분에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기 힘들었단다. 일원 중 유일하게 차가 있었던 손상기(81) 씨가 병원 입원 중에도 촬영을 위해 운전에 나서는 투혼을 펼쳤지만 운전 도중 차가 도랑에 빠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배 씨는 "촬영장에 있던 노인 5명이 덤볐는데도 차가 꼼짝하지 않아 결국 견인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들이 만든 영화 '나는 70대 청춘이다'는 지난달 말 열렸던 부산시 주최의 제7회 부산실버영상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우수상 수상에 이어 한 단계 오른 것이다.

경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3분짜리 단편 영화 '출발시간'으로 코레일에서 주최한 제1회 초단편철도영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국 응모작 285편과 겨뤄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영화 '출발시간'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순분 씨는 "영화는 삶의 활력소가 됐다. 완성작을 보고는 '내가 이렇게까지 했나' 싶어 흐뭇하기도 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의 계획도 살짝 귀띔했다. "다음엔 힘들겠지만 극영화도 찍어보고 싶습니다. 액션이나 멜로에 도전장을 내밀어볼까요. 하하하."

이들 영화는 '만세픽처스 단편영화관(tv.naver.com/mspic)'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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