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음악의 날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창욱 음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다. 곤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붕의 크기가 또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새가 힘차게 날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이면 남쪽 바다 끝을 향해 날았다. 제해(齊諧)에 따르면,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을 쳐서 삼천 리나 튀게 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며, 6개월을 날고서야 날개를 접는다."

도가의 맹주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붕새의 높고 깊은 뜻을 참새와 뱁새가 어찌 알 수 있으랴마는,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춘추전국시대를 수놓은 철인의 대범하고 의연한 풍모에 새삼 경외감을 갖기도 한다.

역량 있지만, 등용 어려운 연주자 대상
문화네트워크 '음악풍경'의 신예 발굴
이들로 조직된 '찾아가는 콘서트' 행사
침체 빠진 음악 문화 되살리는 날갯짓


그러나 날개는 비단 붕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벌이나 나비, 새도 날개가 있고, 하다못해 파리나 모기 따위의 옆구리에도 날개가 달려 있다. 그뿐만 아니다. 낭만시의 거장 하이네까지 "노래의 날개 위에, 그대를 보내노라"고 노래했으니, 음악에 날개가 있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음악의 날개는 어느 정도의 크기이고,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가위 붕새에는 범접지 못하리라. 오히려 붕새의 날개도 알 수 없는 터에, 굳이 음악의 날개를 묻는 자체가 차라리 우문(愚問)이 아니랴. 다만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킨다'는 말이 있고 보면, 적어도 음악의 날갯짓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내가 후원하고 있는 문화네트워크 '음악풍경'이 때마침 음악의 날개를 펴고 있다. 음악풍경은 수년 전부터 '청년음악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것은 역량 있는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경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연주자를 발굴하기 위한 사업으로 지금까지 총 35명의 성악·기악 연주자들을 등용시켰다.

이들로 조직된 앙상블은 공연장을 찾기 어려운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콘서트를 꾸며 왔다. 강서예술촌을 비롯해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행복발전소, 회화나무 샘터공원, 하단 유수지 어울마당, 감내어울터 콘서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 덕분에 음악풍경은 지난해 부산시로부터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되었고, 부산야행 뜨락콘서트(임시수도기념관), 스웨덴병원 사진전 오프닝 콘서트(동아대 석당박물관) 등 점차 무대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찾아가는 콘서트: 음악의 날개'가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사업에 선정됨으로써 향후 움직임에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앙상블 음악풍경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음악이든 연주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즉 앙상블 규모의 축소나 확대가 자유로울 뿐 아니라, 전속 기획자·진행자·편곡자 등을 적재적소에 포진시킴으로써 수용자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강점이다.

오늘날 음악문화가 갈수록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대학 음악교육이 쇠퇴하고, 동네 음악학원이나 악기점도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음반 판매점, 음악전문 서점도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다. 공연장 또한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던 시절도 이미 지났다.

'찾아가는 콘서트'를 위해서는 음악의 수용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가령 방황하는 청소년, 새터민, 도서·산간지역 주민도 있고, 워킹맘,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감정노동자도 있다. 요컨대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하는 곳은 도처에 널려 있다.

바야흐로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음악의 날개를 한껏 펼쳐야 할 때다. 그것이 비록 붕새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날갯짓이 도처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속에 스며든다면,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면, 마침내 세상에는 음악의 폭풍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