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613> 담양 오방길 2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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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따라 걷는 길… 돌 틈마다 서린 구국의 숨결

담양 오방길 2코스 산성길을 따라 걷다가 호국의 얼이 서린 보국문을 지나니 금성산성 내성이 펼쳐진다. 오래된 성벽을 따라 걷노라면 높고 푸른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산이 좋으냐, 물이 좋으냐'고 묻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아빠가 좋니, 엄마가 좋니'라는 질문만큼 가혹하다. 그런데 그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할 길이 생겼다. 전남 담양 오방길 2코스인 '산성길'이다. 금성산성에 오르며 산길을 만끽하고, 보국문 망루에 서서 담양호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물을 즐긴다. 마침 꽃무릇이 만발한 동자암의 기화요초는 신선의 세계에 발을 들인 듯하고,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간직한 돌로 이루어진 금성산성은 역사와 세월을 일깨운다. 순창에서 담양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시원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기분 좋은 덤이다.

산 좋고 물 맑은 산성길 10.2㎞
담양리조트 오른쪽 임도서 출발

우뚝 솟은 산마루 길게 선 성벽
나라 지킨 선조들 기개 보이는 듯
발아래는 시리도록 맑은 담양호

꽃무릇 만발한 동자암 기화요초
신선의 세계에 발 들여 놓은 듯

■상사화여 상사화여

순창에서 담양 가는 국도에서 만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담양 오방길이 있다는 이야기는 진작에 들었지만 가 보지 못했다. 오방은 지난 연말 시국 속에서 부정적으로 비쳤지만, 동양 문화권에서 우주 인식과 사상 체계의 중심이 되어온 원리다. 모두 5개 코스로 구성된 오방길은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걷는 '수목길'과 소쇄원~면앙정을 걷는 5코스 '누정길' 등이다. 이번에 다녀온 코스는 2코스 산성길. 안내문에는 10.5㎞로 3시간 25분이 걸린다고 했다. 취재팀은 4시간 25분이 걸렸다. 원점 회귀 코스로 온천이 있는 담양리조트에서 출발하여 산성길 진입로~산길 갈림길~주차장 갈림길·쉼터~봉수대~보국문~충용문~금성산성~동자암~약수터~서문 갈림길~보국사터·휴당산방~서문~임도~회향정~정자 쉼터를 거쳐 담양리조트까지 10.2㎞를 걸었다.
산성길 초입에 만난 꽃무릇.
담양리조트에서 추월산 쪽 도로를 따라 5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난 임도에 산성길 이정표가 있다. 돌아오는 길도 이 길을 걷는다. 다만, 도로는 좁은데 시골 치고는 차량 통행이 잦아 위협적이었다. 도로를 따라 걷는데 입구가 예사롭지 않은 농장이 있다, '삼성농장'의 입구엔 꽃무릇이 한창이다. 꽃이 진 후에야 잎이 피기 때문에 붉은 상사화라고도 하는 꽃이다. 결코 만날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보여 주는 꽃. 아름다운 꽃이라 그런지 뿌리엔 독성이 많다고 한다. 절집 단청이나 탱화에 꽃무릇 뿌리를 찧어 섞으면 벌레가 꾀지 않아 사찰 주변에 꽃무릇이 많이 번졌다는 설이 있다.

삼성농장을 지나 만나는 임도 입구가 산성길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오른편 능선으로 보국문 이정표가 있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껴안고 자라는 연리목이 있다. 나중에도 이런 연리목을 많이 만나는데 산성길의 독특한 풍경이다. 주능선에 올라서자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긴 의자가 있어 쉬어 가기에 좋았다.

■호남창의회맹소 본진

이른 아침에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제법 쌀쌀했는데 햇살이 퍼지자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숲 그늘이 넉넉하여 편안하게 걷는다. 두 갈래 길이 나오지만 어느 길로 가더라도 보국문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한다. 작은 안부에 '봉수대'라는 이정표가 있다. 돌아서서 올라서니 흔적만 남았다. 조망이 좋다. 멀리 담양 시가지가 잘 보인다. 다시 되돌아서서 보국문을 향한다. 높은 성벽 사이에 누각이 있다.

입구를 좁게 설계해 방어형으로 쌓은 금성산성 보국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서 있는 보국문은 금성산성의 정문인 셈. 방어용으로 만든 좁은 입구를 들어서자 넓은 성안 풍경이 펼쳐진다. 백양산에서 무등산으로 흘러가는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뚜렷하다. 발아래 푸른 물을 담은 담양호가 넘실거린다. 산성이야 적정을 탐지하느라 높은 곳에 세웠겠지만, 지금은 그 위치가 사방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기다란 석성을 따라 굽이치듯 위로 향한다. 보국문을 닮은 충용문이 나온다. 역시 입구를 좁디좁게, 싸우기에 유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안은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 시설. 호남창의회맹소 자리다. 구한말 호남에서 봉기한 의병부대의 본진이 있던 곳. 1908년 이곳 금성산성에 머물던 의병들은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한다. 이 성은 그 전에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도 전투가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의병의 거점이었단다. 고려 때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만든 성은 오랜 세월 '충의'를 지켜 왔다.

훼손된 비석을 지나 서문 갈림길에서 동자암을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멋진 돌탑이 먼저 반긴다. 동자암에도 꽃무릇 지천이다. 작은 돌탑과 소박한 대웅전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절이다. 스님은 출타 중이고 대웅보전 벽에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오'라는 글귀만 뚜렷하다. 절집을 나와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신다. 물맛이 그윽하다.

■수몰민의 고향 사랑

다시 동자암 갈림길로 나와 서문을 향해 걷는다. 작은 계곡을 따라 걷는 내리막길이다. '사랑 나무'라는 연리목이 있다. 물푸레나무와 팽나무가 서로를 감싸고 있는데 부부간의 금실을 상징한다고. 맨날 저렇게 껴안고 있으면 힘들기도 하겠다.

계곡이라 습기가 많아서인지 이끼도 짙푸르다. 나뭇잎 사이로 조금씩 쏟아지는 햇빛 아래 지의류를 안고 사는 오래된 나무들이 신비롭다. 물봉선화도 만발하여 숲길이 즐겁다. 보국사터에는 낮은 흙집 하나가 있다. '휴당산방'이라는 당호가 걸렸다. 홍성주 시인의 집인 모양. 그의 시가 토담에 걸려 있다.

금성산성 성안에 나뒹구는 돌확.
휴당산방 앞을 지나 서문으로 내려선다. 왼쪽에는 제법 물소리가 세찬 계곡이 있다. 대나무가 번갈아 나타나는 숲길이다. 커다란 돌확에 물이 담겨 있다. 성안이었으니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다. 서문은 계곡을 활용해 만든 성문. 성벽은 옛날 그대로인데 절벽 위로 이어진 위세가 대단하다.

서문을 지나 담양호 이정표를 따라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는 또 다른 풍경의 숲길. 호젓하게 걷는다. 지도를 보니 담양호의 만곡진 골을 따라 길이 나 있다. 나뭇잎 너머로 언뜻 푸른 물결이 보인다. 곶 부리에서 만난 회향정은 1974년 담양호로 수몰된 산성리 주민들이 고향을 생각하며 만든 정자. 당시 250여 명의 주민이 고향을 잃었으나 향수를 못 잊어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 회향정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다.

망향비를 보며 다시 걷는다. 숲 그늘 짙은 곳에서 밤톨 하나가 도르르 구른다. 저절로 떨어지는 밤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임도 고갯마루에 있는 쉼터를 지나니 내리막길. 보국문 이정표를 다시 만났다. 담양리조트로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가을이다. 문의: 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담양 오방길 2코스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담양 오방길 2코스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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