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이트]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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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우울한 소년이 몬스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몬스터 콜'은 소년이 상상 속 존재 몬스터를 만난 후 이야기를 섬세하기 그려낸 판타지물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른들을 위한 동화, '판의 미로' 제작진이 참여한 다크 판타지, 우울을 동력 삼아 깊은 어둠을 향해 자맥질하는 성장담. '몬스터 콜'을 설명하는 말들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정확하고 효율적인 문장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고 싶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몬스터 콜'은 내게 이야기의 효용과 신비를 새삼 일깨워 준 영화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하는가, 한 발 더 나가면 왜 영화로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화답이라고 해도 좋겠다.

우회로를 하나 거칠까 한다. '몬스터 콜'을 보자마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하루는 지인 중 한 명이 무척 우울해 한 일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오랫동안 병상에 계신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 친척들끼리 작은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자녀 중 한 분이 힘겨워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영양주사를 놓아주었는데 오랫동안 돌봤던 다른 자녀가 편안히 보내드려야지 왜 가시는 길 힘들게 하냐고 화를 냈다는 거였다. 그 순간 긴 설명에도 내심 와 닿지 않던 상황과 감정들이 단번에 내게 밀착했다.

'판의 미로' 제작진 참여한 판타지
관객들에게 '성장의 의미' 전달


이야기의 힘은 대체로 이와 같다. 할머니가 오래 사셨으면 하는 마음과 빨리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 현실 속에서 충돌하는 감정을 동시에 품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런 모순적인 상태는 아무리 언어로 풀어헤쳐 설명한다고 해도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우리가 이야기를 발명하고, 그 우회로를 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상황과 감정을 높은 밀도로 전도시킨다. 이야기와 비유는 얼핏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인 셈이다.

'몬스터 콜'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12살 소년 코너(루이스 맥더겔)는 집에서는 아픈 엄마를 돌보고 학교에선 괴롭힘당한다. 반복되는 악몽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소년은 어느 날 창가 언덕 위 나무가 거대한 몬스터가 되어 찾아오는 환상을 본다. 몬스터는 소년에게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지막으로 소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두려움에 묻어둔 진심과 함께. 어떤 언어를 빌려도 소년의 상태를 정확히 전달할 순 없다. 하지만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관객 각자의 기억을 자극해 또 다른 이야기로 싹 틔울 씨앗을 뿌린다.

누군가에게 소년의 사정을 전할 때 '소년은 지치고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하면 정확할까. 아니면 소년이 겪은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나을까. '몬스터 콜'은 소년에 관한 네 번째 이야기를 통해 성장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침과 오전 사이처럼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경계의 시간. 따스하고 포근했지만 동시에 아프고 쓰라리고 어지러웠던 시간. 누구나 거쳐 왔지만, 누구도 같지 않은 시간. 영화는 '성장'이란 단어의 행간에 녹아든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이야기라는 비유의 힘을 빌려 전한다. 몬스터도 이야기도 당신이 부르면 답한다. 필요한 건 이야기를 믿는 힘과 약간의 상상력 정도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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