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할머니의 면접교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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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변호사

자녀 있는 부부가 이혼할 때 양육권을 갖지 못하는 쪽은 자녀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를 '면접교섭권'이라 하며 민법 제837조의2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면접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부모의 일방에 국한되어 있었고 조부모, 즉 부모 일방의 직계존속은 제외되어 있었다. 과거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이 규정이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한 뒤에도 직업을 갖는 소위 워킹맘이 늘어나면서 법 개정의 목소리가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딸이나 아들, 며느리나 사위를 대신해 손자를 돌보는 조부모가 면접교섭권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혼한 자녀가 아이의 양육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 손자가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 생겨났고, 입법을 통해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최근 몇 년간 실무에서도 손자에 대한 면접교섭권을 주장하는 조부모가 빈번하게 등장했고, 결국 설문조사와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정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발의된 민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해 올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기존에 있던 부모 일방의 면접교섭권에 더하여 '자를 직접 양육하지 아니하는 부모 일방의 직계존속은 그 부모 일방이 사망하였거나 질병, 외국 거주, 그밖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자를 면접교섭할 수 없는 경우 가정법원에 자와의 면접교섭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신설된 조항에도 한계는 있다. 하나는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을 1차적 권리가 아닌 자녀가 행사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긴 경우 2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제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도록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부모에게 면접교섭권을 인정한 것은 한층 진일보한 개정임에 틀림없다.

이혼 때 자녀 만날 권리
조부모에게도 제한적 인정
개정 민법 6월 시행 '진일보'

부모 이혼에 상처받는 아이들
양육권·면접교섭권 결정은
자녀 복리 최우선 고려해야


개정안을 지켜보며 문득 과거 필자의 사무실에 찾아왔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났다. 아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그 사이에 며느리가 아들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 다섯 살 난 손자의 양육권을 가져간 사건이었다. 할머니는 손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애지중지 돌보며 각별한 정을 쌓아 온 터라 앞으로 손자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때는 법적으로 면접교섭권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고, 결국 할머니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만일 개정안이 시행된 지금이라면 할머니는 아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정을 법이 규정하는 '그밖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간주해 적극적으로 가정법원에 면접교섭권을 청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면접교섭권을 논함에 있어 한 가지 유념해야 될 사실이 있다. 면접교섭권은 부모 일방이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권리이기는 하지만 권리의 행사가 자녀의 복리에 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민법 역시 같은 조 제3항에서 '가정법원은 자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당사자의 청구 또는 직권에 의하여 면접교섭을 제한·배제·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혼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부모 싸움에 어린 자녀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부가 이혼을 할 때 아이의 장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상대방으로부터 양육권을 쟁취하는 것 자체에 목적을 부여하다 보니 아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감정 싸움만 난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OECD 전체 34개 회원국 중 9위, 아시아 회원국 중에서는 1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이혼을 터부시하던 인식이 바뀌었고,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가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통념도 많이 희석되었다.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도 이혼율 증가에 한몫을 한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이가 받게 될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는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였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이혼은 자유라 하더라도 아이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은 변함이 없다. 양육권이든 면접교섭권이든 모두 아이의 입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권리이기에 앞서 아이를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아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이혼을 하는 부부가 아이를 위해 공동으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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