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명륜초교 '욱일기 연상 교표' 100년 만에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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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명륜동 명륜초등학교가 개교 100년을 맞아 지난달 교표(학교 휘장)를 바꿨다. 공한옥 교장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기존 교표를 설명하고 있다. 새 교표는 기존 교표에서 욱일기 연상 무늬만 없앴다. 정종회 기자 jjh@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부산의 한 초등학교가 '교표'(학교 휘장)를 개교 100년 만에 바꿨다. 기존 교표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켜서다. 일제 잔재 청산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했던 학교 역사라는 반론도 적잖은 현실에서 뜻깊은 결정을 내린 셈이다. 부산 동래구 명륜동 명륜초등학교 얘기다.

명륜초등학교는 지난달 31일 '교표 변경위원회'를 열어 새 교표를 확정했다. 지난 1일부터 교기, 학교 담벼락, 현관, 각종 안내장, 학생 운동복에 인쇄된 기존 교표를 교체하는 중이다.

1917년 개교 동래 명륜초등
그동안 수차례 논란 겪다
학생·학부모 등 설문 거쳐
이번 달부터 새 교표 사용

기존 교표는 중앙에 둥근 원을 두고 바깥으로 빛이 뻗어 나가는 무늬가 들어있다.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욱일기와 비슷하다. 욱일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면서 사용했던 깃발이다.

명륜초등학교가 교표 변경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몇 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1917년 5월 일본인이 본인소학교로 설립한 사실 외엔 교표가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욱일기 모방' 논란만 분분했고 결국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공한옥 교장이 부임하면서 교표 변경이 급물살을 탔다. 공 교장이 학교 뒤편 담벼락에 달아둔 수십여 개 교표가 훼손된 걸 본 게 시발점이었다. 당시 교표에서 욱일기를 연상하는 둥근 원과 빛만 삭제돼 있었다.

"지난 4월 일본 시가현 청소년연합회 인사 10여 명이 우리 학교를 방문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한일 교류 차원에서 찾았던 그들이 교장실 한편에 세워둔 교기와 학교 건물 입구 쪽 교표를 한참 응시했다. 이 해가 무얼 의미하느냐고 물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교표를 함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공 교장은 우선 학내 구성원과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마침 개교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던 터라 역사 바로 세우기 교육으로도 맞아떨어졌다. 이어 학생과 학부모의 뜻을 묻기로 한 후 지난 4월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의견 조사를 진행했다. 전교생 1290명 중 1250명이 동참했고, 1000명(80%)이 교표 변경에 동의했다. 그리고 지난 5월 학생대표와 교사 대표, 100주년 추진위원회·기획위원회 위원이 참여하는 '교표 변경위원회'를 꾸렸다. 학생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4월 25일엔 새 교표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존 교표는 지난달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앞으로는 기존 교표에서 욱일기 연상 무늬만 없앤 새 교표가 명륜초등학교의 얼굴로 쓰인다.

명륜초등학교 이재웅 학교운영위원장은 "동래구는 완도군 소안도와 함경남도 북청과 더불어 3대 항일 운동지"라며 "동래구의 유서 깊은 우리 학교가 전통과 바른 역사 중 후자를 선택키로 해 뿌듯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태섭·송지연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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