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둅쌀녕감뎐
/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속옹(粟翁)은 사십 년 교원 생활 끝에 얼마 전 퇴임해 지금은 집에서 무위도식하고 있는 김 모의 자호다. 혹 친구나 제자들이 작호(作號)의 뜻을 물을라치면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창해일속(滄海一粟)' 고사를 끌어다 대며 "인간은 우주의 한 티끌에 불과한 거여!" 하고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양 너스레를 떨지만 알고 보면 그 속이 빤하다. 언젠가 술판을 마치고 통금 시간 직전에 가까스로 집 현관에 골인해 고꾸라지자 그 꼴을 본 아내가 "아이고, 이 멍청한 좁쌀영감아!"하고 혀를 찼는데 그때부터 당연히 좁쌀영감은 그가 평생을 숙명처럼 이고 살아야 할 굴레가 된 거지, 무슨 심오한 철학이나 사상으로부터 그 호칭이 기인된 게 아니다.
그 뒤, 점잖은 자리에서 '저자가 한문 공부를 하느니만치 으레 호가 있으렷다'고 지레짐작한 어떤 분이 "선생, 아호를 뭐라 하시오?" 하고 묻자, 창졸지간에 머리가 하얘진 이 좁쌀이 다급한 나머지 좁쌀 속(粟), 영감 옹(翁)을 급조해 "속옹이라 합니다만…"이라고 둘러대었으니 참으로 그답게 웃기는 일이었다. 더 웃기는 것은 질문한 분께서 "아아, 동파를 원용하셨군. 정말 좋소이다! 선생 성품에 딱 어울리오"라고 감탄을 마지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해 본 소리에 원전까지 찾는 수고를 해 주시고, 별 할 말이 없어 입을 닫고 있는 것을 두고 겸손이라 추어 주신 그 어른은 정말 사랑과 자비의 화신이라 해도 이론이 없으리라.
40년 교원 생활 마친 속옹(粟翁)
자호 내력은 단지 좁쌀영감일 뿐
눈 부라리며 사는 것보다는 나아
속옹 선생은 평생 교직에 종사했건만 자신의 직업에 관한 한 남다른 자부심이나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 일은 방학이나 안식년, 즉 태평하게 노는 때를 제외하면 별로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말 역순사전에서 '질' 자를 찾다가 도둑질, 비럭질, 훈장질은 쭉 열거되는데 대통령질, 국회의원질, 사장질은 없는 걸 발견하곤 과연 그러려니 하고 당연히 여길 정도로 '선생질'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각주: 혹시 의심되거든 위 여섯 항목을 컴퓨터에 입력해 빨간 줄이 나오는지 비교 확인해 보실 것.)
역시 교원 경력이 있던 소세키가 게으름뱅이 교원을 주인으로 둔 고양이의 입을 빌려 "세상에 할 만한 일은 선생질밖에 없다"고 비꼰 걸 두고 정말 탁견이라고 재삼 탄복할 정도이니 교편(敎鞭)이니, 사표(師表)니 하는 거룩한 용어들이 무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중학교 때 장래 희망란에 교사라고 적었다가 담임선생한테 약간 맛이 간 녀석이라고 눈 흘김을 받았는데, 사실 방학 때 안심하고 산에 쏘다닐 수 있는 직업으론 그것이 유일해 보였기에 그리 적었던 것이다.
직업 자체와 마찬가지로 속옹 선생이 평생을 바친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졌다는 증거 역시 별로 없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은 인류의 세계관을 뒤흔든 연구의 기반이 되었던 비글호 항해 이후 15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후 8년간 따개비만 연구했는데, 따개비에 관한 책을 한 권 출간한 후 "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따개비가 싫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감히 다윈의 경우에 견주는 건 매우 어폐가 있지만, 속옹 역시 자신이 선택했던 전공이 지긋지긋했던지, 그간 하도 많이 펼쳐 보아 너덜너덜해진 열 권짜리 한어대사전을 내팽개쳐 둔 지 1년이 넘어간다.
그 대신 어릴 때 꿈을 이룬답시고 동네 주민센터에서 하모니카 강습을 받았지만, 여선생이 세게 불라고 뒤통수를 치는데 성이 나 한 번 가곤 발을 끊었다. 애먼 하모니카만 녹이 슬었으니, 이래서는 평생 공부나 하루 공부나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자기 친구 집 벽장에는 클래식 기타와 테너 색소폰과 우쿨렐레가 주인이 불러 줄 날만을 기다리는 사례도 있다며 애써 자위하는 자가 바로 우리의 친애하는 좁쌀이다. 아아! 애처로울진저. 하나 속옹이여. 넓은 바다 한 톨 좁쌀과 같은 우리이나, 자기만이 옳다고 눈을 부라리고 악담을 퍼부으며 싸우는 자들보다는 나으리니 그대 호가 지닌 뜻을 새겨 더욱 정침하게. 당신을 존중하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