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나는 자연인, 그리고 도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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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철 부국장 겸 독자여론부장

'나도 은퇴하면 저들처럼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살아야지….'

TV시사교양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위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몇 가지 일을 겪은 후 그런 생각이 달라졌다.

최근 부산서 고독사 잇따라 발생
사회적 고립 막을 정책 개발 시급
사람과의 관계 증진 노후 준비도

첫 번째 계기는 퇴직을 앞둔 한 대학교수에게서 왔다. 그는 밀양에서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 살면서 부산의 모 대학으로 출퇴근해 왔다. 그런 그가 정년을 몇 년 앞두고 해운대 아파트로 이사 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예로부터 남자가 60이 넘으면 별장과 첩질(?)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여름철 돌아서면 무성해지는 잡초와의 전쟁에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손바닥만 한 텃밭도 힘에 부치고, 장거리 운전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깊은 산 계곡에 들어가 살고 있는 '자연인'을 만나고 나서다. 그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기자에게 막걸리를 내놓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후 이곳에 정착했으며, 개발 바람이 다가오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세 번째는 일본의 한 소설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의 깊은 산속 펜션으로 달아난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산속에는 너무나 많은 펜션이 방치되어 있어 그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대목이 나온다. 최근 은퇴 후 자연으로 들어갔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일본의 전철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네 번째는 병원 응급실 통계를 보고 나서다. 야간에 병원 응급실을 찾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장염 환자라고 한다. 만약 산속에 있을 때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마지막으로는 한 연구결과를 보면서 무릎을 쳤다. 사람들이 일부러 고독을 찾는 것은 착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년 전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내용에 따르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기를 힘들어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즐겁지 않은 것' '고독을 낭만적인 것'으로 상상한다는 연구다.

사실 나이가 들면 활동성과 사회성이 떨어져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다. 또한 1년이 지나면 친구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를 고려하면 나이가 들면 고독과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최근 부산지역에서 고독사가 잇따라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조기 사망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고독사 뉴스를 보면서 재정적인 노후 대책과 함께 사회적 유대 증진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산시에서도 사회적 고립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 개발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리를 이루고 모여 살아야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했다. 특히 도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적합하게 진화된 주거공간이다.

산속으로 들어가 고독을 즐기기를 꿈꾸기보다 사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어떨까. 새로운 만남이 부담스럽다면 향우회와 동창회에 자주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본보는 지난 6월부터 '우리 향우회' '우리 동창회'를 시리즈를 보도하고 있다. 이경신 재부함양군향우회장과 현영희 재부밀양향우회장 등은 인터뷰에서 이구동성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향을 위해 노력하는 게 참으로 보람있는 일" "고향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하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했다. 다른 이들도 "동창회와 향우회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인이면서도,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도시인이다. wcl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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