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 산책] 소나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48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국민 소설'

애니메이션 '소나기'는 시골소년과 도시소녀의 풋풋한 첫 만남과 설렘을 담아낸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단편소설도 드물다. 인기와 명성만큼 여러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어왔던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48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에 이은 안재훈 감독의 두 번째 한국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이다.

한복 저고리와 바지가 어색하지 않던 시절, 서울에서 온 핑크색 스웨터의 소녀가 시골 소년의 마음에 들어온다. 소년은 징검다리 가운데서 놀고 있던 소녀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개울을 건널 만큼 수줍지만, 막상 소녀와 동행하게 되자 송아지에 올라타 우쭐대기도 하고, 불어난 개울 앞에서 곧 등을 들이댈 만큼 용감한 모습도 보인다. 좁은 수숫단 속에서 한 차례 소나기를 함께 피하는 동안 둘 사이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그러나 예정된 이별이 있기에 소년과 소녀의 짧은 나들이에는 아쉬움이 드리우고, 다시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의 낯빛은 점차 어두워진다.

인물·풍경·소리 조화로운 연출
서정적인 원작 느낌 그대로 살려


문자 언어와 영상 언어를 비교해 보는 것은 문학을 각색한 영화를 감상하는 큰 즐거움이다. 독자이자 관객들에게 잘 알려진 장면, 익숙한 대사가 작품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기대하게 된다는 의미다. 가령, 우리는 소녀가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며 "이 바보!"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 소년이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너는 모습 등이 시청각화 되어 전달하는 또 다른 감흥에 주목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떠올렸던 이미지들과 비교하며 감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지적인 상호작용이 '다 아는 이야기'라는 핸디캡을 뛰어넘는다.

그런 면에서 지난달 31일 선보인 안 감독의 '소나기'는 '안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에 서정적이고 소박한 원작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 먼저, 제목과 동시에 연상되는 '순수'라는 단어를 그대로 도화지에 옮겨놓은 듯한 작화가 눈에 띈다. 도시에 없는 형형색색의 자연은 마음을 온화하게 밝혀주고, 그 속을 누비는 홑꺼풀의 주인공들이 심심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조화와 균형을 고려한 연출도 작품을 안정적으로 만든다. 정적인 풍경과 동적인 아이들을 함께 배치한다든가 음악과 대사, 공간의 소리(ambience)를 번갈아 강조한 점,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사이에 마을의 모습이나 아이들의 목소리를 삽입해 서사의 완급을 조절한 점 등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나 빠른 편집 대신 자연과 인물들만으로 잔잔한 감정의 결들을 쌓아간 '소나기다운'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