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난의 행군'이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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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서울경제팀장

한국 해운업이 내리막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으로 청산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 1년 사이 한국은 해운 강국에서 해운 약소국 추락을 걱정할 처지가 됐다.

지난 1년간의 상황은 성적표를 보면 간명하다.

1년 전 오늘 한진해운 법정관리
한번 잘못으로 너무 많은 것 잃어
시민단체의 국정조사 요구 주목
진실 규명 없이는 재도약 어려워


국적 글로벌 선사들의 선복량은 지난해 8월 105만TEU에서 올해 8월 39만TEU로 62.9% 급감했고, 북미 노선 점유율은 지난해 6월 10.9%에서 올해 6월 5.8%로 반 토막 났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주요 자산을 국내 선사에 넘겨 경쟁력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공수표'에 그쳤다. 핵심 자산인 1만 3000TEU급 선박 9척은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 등 해외 대형 선사에 넘어갔다. 한진해운 71개 노선 중 유럽 노선은 청산됐고, 해외 터미널 중 전략적 자산으로 꼽힌 미국 롱비치터미널은 MSC가 인수했다.

한진해운 청산 후 '원톱'으로 남은 현대상선의 상황도 좋지 않다.

현대상선은 지난 2분기 매출 1조 2419억 원, 영업손실 1281억 원을 기록했다. 여기다 현대상선은 '반쪽' 원양선사로 분류된다. 현대상선은 미주 서안·아시아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자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주 동안, 남미에서는 다른 선사의 힘을 빌려야 한다. 얼라이언스에 들지도 못했다. '2M'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곤 있지만 위태하다. 2M과의 협약에 따라 현대상선은 2020년 2월까지 선대확장을 위한 신조선 발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불안한 입지 속에 적자가 누적되면 언제 당국자가 또다시 '읍참마속' 운운하며 현대상선을 파산시키려 할지 모른다.

반면 현대상선이 원양에서 밀려 근해로 들어오면서 아시아 역내에선 선복과잉으로 난리가 났다.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는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부랴부랴 '한국해운연합(KSP)'을 출범시켰지만 KSP가 제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따지고 보면 단 한차례의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전체가 엉망이 됐다.

회복도 쉽지 않다. 한진해운 규모의 선사를 만들려면 대략 30~40년이 필요한데, 글로벌 선사 간 규모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 정도 선사를 만드는 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부산항발전협의회 등 부산 시민단체들이 한진해운 사태를 과거 금융당국과 해양수산부, 채권단 등이 초래한 '해운 대참사'로 규정하고 최근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진실 규명은 오리무중이고, 해수부든 금융위든, 한진그룹이든 누구 한 명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진실 규명 없이 해운업의 재도약은 기약하기 어려울 터이다.

그나마 새 정부가 해운업 부흥에 관심이 크다는 게 위안거리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내년 6월에는 자본금 5조 원 규모의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정부의 지원이 힘은 되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앞은 가시밭길이다.

현대상선이 살아남으려면 '규모의 경제'가 불가피하다. 업계에선 현대상선의 적정 선복량을 100만TEU 이상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현대상선이 선복을 100만TEU 이상으로 확보하는 데 9조 9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컨설팅 결과가 나왔다. 6000억 원을 지원하지 않아 한진해운을 침몰시킨 당국이 무려 10조 원을 들여 현대상선을 키운다?

전문가들은 '묘약'은 없다고 강조한다. 20~30년에 걸쳐 조금씩 규모를 키워 나가는 수밖에 없으며, 해운인들이 뭉쳐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본격화되고, 현대상선과 2M 간 협력관계가 끝나는 2020년에 한국 해운업 재도약의 변곡점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jhwa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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