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거친 말 대신 '선한 말'로도 뜻 전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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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간된 책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는 이해인 수녀에게서 긍정의 힘이 전해진다. 강원태 기자 wkang@

수도서원(修道誓願) 50년. 시인이자 작가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이해인 수녀가 수도 생활에 오롯이 집중해 온 반세기 세월이다.

내년 5월이면 수도서원 50주년을 맞는다는 이해인 수녀가 최근 인문교양서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샘터)를 펴냈다. 고운 말 지침서이자 글쓰기 안내서인 책은 일상을 중심으로 고운 말을 써야 하는 이유와 방법, 글쓰기 노하우 등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거친 언어가 난무하는 세상을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공유된 덕분일까. 발간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 4쇄를 찍을 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해인 수녀 새 인문교양서
'고운 마음 꽃이 되고…'
발간 한 달 안 돼 4쇄 찍어

"일상서 막말 많아 아쉬워
언어생활 성찰 계기 되길"

이해인 수녀를 만나기 위해 부산 수영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 내 해인글방을 찾았다. 그의 얼굴에 번진 환한 미소는 세월의 흔적을 잊게 할 만큼 밝고 따스했다.

30여 년간 고운 말 쓰기에 매진해 온 이해인 수녀에게 고운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고운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낭만적이고 비단결 같은 말만 일컫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불의한 현실에 분노하며 거친 말을 쓸 수 있지만 한 번쯤 상황을 돌아보고 다른 표현을 찾아보자는 뜻이다. 이해인 수녀는 "따뜻하고 겸손한, 선한 말로도 얼마든지 뜻을 전할 수 있다. 책은 자신의 언어생활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하는 입장이지만 고운 말을 쓰기 위한 노력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말에 의외로 거친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설득으로 상대를)구워 삶았다'라거나 '골 때린다'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말 가운데도 막말이 많다는 그는 최근 한 동료 수녀와의 대화를 예로 들며 거친 말을 내뱉고 싶은 순간을 한 번쯤 참아보라고 조언했다. 빌려 간 물건을 되돌려 받지 못해 화가 난 상황에서 이해인 수녀가 마음을 달래며 내놓은 답은 수도자의 노력이 밴 산물이었다. "물건이 주인을 찾아 외친다는 속담이 있으니 그 물건도 내게 언젠가 돌아오겠죠."

반세기 세월을 수도에 정진하며 한 우물을 파다 보니 마음이 조금 넓어지는 듯하다는 이해인 수녀는 9년 전 암 발병 후 "감사가 더 깊어지고 사랑이 더 애틋해지고 기도가 더 간절해졌다"고 귀띔했다. 큰 병을 앓고 보니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데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 정신세계는 오히려 가족이나 자기중심적으로 머물러 안타깝다는 그는 "'사랑의 좁은 길을 넓은 마음으로 달려가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50주년을 앞두고 올 연말 300편에 달하는 기도시를 모은 개정증보판 기도시 모음집 <사계절의 기도> 발간에 이어 본보 등을 비롯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새 산문집을 펴낼 예정이라는 이해인 수녀는 여전히 많은 이웃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지난 18일엔 시각장애인이 된 개그맨 이동우의 토크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해 자작시를 읊었으며, 지난 22일엔 부산대병원이 기부자의 나눔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도네이션 월(Donation Wall)' 제막식에 참석해 벽에 새겨진 자작시 '한 톨의 사랑이 되어'를 낭송하기도 했다. "불교, 기독교 등 종교를 넘어선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문학의 힘이었어요. 수도자로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도구가 되는 시를 쓰며 힘이 닿는 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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