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다큐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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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권위주의 사회에 맞선 청년들의 저항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무한경쟁과 권위주의, 반공 이데올로기 등 숨 막히는 사회에서 청춘들이 어떻게 발버둥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찬란 제공

전복, 도발, 파격, 저항, 기타 등등.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묘사할 단어들은 대개 이런 식일 것이다. 홍대 주변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2인조 펑크 록밴드 밤섬해적단의 제목을 딴 다큐멘터리는 이들의 문제적 행보를 고스란히 따른다. 밤섬해적단의 1집 음반 제목이기도 한 '서울불바다'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느낄만한 부조리를 자신들만의 표현으로 뭉쳐놓은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김정일 만만세'라는 도발적인 외침은 북한을 찬양하는 게 아니다. 풍자지만 그렇다고 반공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노래는 반대의 멜로디라기보다는 사회와 충돌로 인해 빚어진 마찰음에 가깝다. 선택과 올바름을 강요하는 기성세대, 고압적인 권위에 대해 '이것도 저것도 싫다'는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내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이어나가는 밤섬해적단의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도발적이다.

2인조 펑크 록밴드 밤섬해적단
세상 향한 그들의 솔직한 외침


하지만 정윤석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전복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정윤석은 누구와도 닮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통찰을 자기 언어 안에 담아내는 드문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의 지존파 사건에서 출발해 삼풍백화점 등 국가적 살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사건까지 한 줄로 엮어낸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의 밀물이 서서히 발밑을 적시던 1990년대의 느리고 차가운 흐름은 예민하게 감지해냈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그 연장에서 지금의 청춘들이 무한경쟁과 권위주의, 반공이데올로기 등 숨 막히는 사회에서 어떻게 발버둥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뉴타운 개발, 강정마을 등 시위 현장에서 노래하는 밤섬해적단의 행보는 얼핏 거친 저항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싶다는 솔직한 외침일 뿐이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도 마찬가지다. 이 독특한 작품은 인물 다큐, 사회고발 다큐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기존의 질서 어느 쪽에도 포섭되지 않는다. 그저 온전히 정윤석이라는 한 사람의 반응일 따름이다.

24일 선보인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전복적으로 느껴지는 건 밴드 서울불바다의 생겨먹은 꼴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들을 담아내는 정 감독의 시선이 온전히 담긴 덕분이다. 이건 정윤석의 영화다. 영화는 감독의 것, 당연하게 들리지만 이 당연한 명제를 실행하는 영화가 요즘엔 귀하다. 정윤석은 심지어 다큐의 외피를 쓰고 이를 해낸다. 이 영화를 다큐, 실험, 극, 미술, 음악 등 특정 장르로 재단하고 해석하는 건 의미 없다.

'논픽션 다이어리'가 장밋빛으로만 소비되던 1990년대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라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2000년대를 함께 버텨낸 청춘들에 대한 동물적인 해석이다. 이걸 굳이 정의내리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세계인 동시에 그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세계에 대해 작가가 내어놓은 답. 정답이 아닌 하나의 답. 딱 그만큼의 가치. 그래서 유일무이한 가치. 그게 예술이다. 답은 관객에게 전해지고 다음 답으로 이어진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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