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도시재생, 공동체 만드는 방향으로!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
어느 날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고 있다는 고등학생인 박○○ 군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1인 가구 마을을 위한 건축 연구보고서: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제안'으로 세대 간의 갈등, 고령화 사회, 1인 가구의 증가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건축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청소년들도 이들 문제를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에 놀랍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고독사 증가, 주거 방식 문제 탓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몰라
새 정부 대단위 도시재생 추진
틀에 찍어 내는 식이어선 안 돼
지역 맞춤형 주거방식 '관건'
이웃 연결하는 '신재생' 돼야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빈집과 1인 가구의 증가, 고독사 등 도시주거와 관련한 문제들이 연일 화제이다. 부산에서는 지난 40여 일 동안 17건의 고독사가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부산 곳곳에 설치된 5400대의 CCTV로도 고독사를 예방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의 고독사 문제는 심각한 상태로 사회적 교류가 부족한 독신 남성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 일본 후생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 남성이 50세까지 미혼인 비율은 2015년 22.8%이며, 2023년에는 29%로 3명 중 1명에 이를 거라고 한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은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오토록(Auto-Lock) 철문과 콘크리트 벽으로 갇힌 주거공간은 고독사를 유발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도시의 주거공간(아파트)은 거주의 가치보다 편리성만 추구하고,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며 교환가치를 높이는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들의 책임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가족, 공동체와의 교류를 외면한 것이다. 도시주거가 앓고 있는 자폐적 병리현상이나 공간의 폐쇄성에서 오는 우울증과 고독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다.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한 재개발사업과 재생사업마저도 이상하게 겉돌고 있다. 주민들의 삶을 관광 상품화하며 마을의 전통적 질서와 가치마저 단절시킨 채 지가와 건물값만 올리고 결국 원주민들을 떠나게 만들고 있다.
새 정부는 연간 10조 원, 5년간 50조 원을 투자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도시재생이 대규모 아파트 건립이 아니라 주민 참여를 통한 소규모 단위사업을 추진하고, 대형 건설사에 의한 사업이 아니라 지역기반의 소규모 단위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의 역사와 원형을 보존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대도시가 안고 있는 주거 문제들은 유사한 형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와 원인마저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외국 사례를 통한 합리성과 과학적 논리를 앞세운 주거방식과 도시공간이 아니라 지역문제의 원인과 특수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맞춤형 주거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지역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 활동가와 전문가인 도시계획가, 건축가의 역할이다. 최근 세계 건축계에서도 도시=발전, 지역=퇴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논리에 의한 해법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맞춤형 건축가들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2017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3인(라파엘 아란다, 키르메 피겜, 라몬 빌랄타)의 작품은 주목할 만하다. 30년 가까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지역성을 살리기 위해' 주변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재료를 선택하고 지속가능한 맞춤형 해법을 제시함으로서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원래 있던 떡갈나무들이 운동장 안에 그대로 서 있는 육상트랙, 실내의 모든 곳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한 무지갯빛 외양의 유치원, 낡은 극장 터를 공공장소로 재탄생시킨 멋스러운 풍경의 공공용지 등은 지역과 자연이 살아 있는 건축이다. 그들의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물리적 환경개선과 관광을 위한 재생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고립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셰어 하우스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주거공간 창출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지역자산을 토대로 공동체를 확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 맞춤형 주거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