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계란'이나 '달걀'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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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지구촌'이라는 말이 과장이라는 생각을 바꿨다. 유럽에서 시작된 '살충제 달걀' 파문이 우리에게 다가온 속도를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당장 어제부터 부산에서도 학교 급식에 계란 사용이 중지됐다.

한데, 신문을 만드는 신문사 편집국에서도 작은 소동이 있었다. '달걀-계란' 표기 때문이었다. 혼용해도 된다는 의견 속에 '달걀로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계란과 달걀 중 표준어가 어느 것인가요?'라는 물음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간단하고 단호하다.

''계란'과 '달걀'은 동의어이고, 둘 다 표준어입니다.'(2015. 6. 29. 홈페이지 '인터넷가나다')

뭐, 굳이 이런 답변을 듣지 않아도 둘 가운데 하나가 비표준어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 이런 사실은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계란' 풀이말 뒤에 실려 있는 '관용구/속담'.

·계란이나 달걀이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말.(어떤 길을 택하든지 계란이나 달걀이나지.)

·계란에도 뼈가 있다: 늘 일이 잘 안 되던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났건만, 그 일마저 역시 잘 안 됨을 이르는 말.

·계란으로 바위 치기=달걀로 바위 치기.

이러니 계란과 달걀 중 표준어가 어느 것인지 묻는 일 자체가 쑥스러울 판이다. 대체 누가 계란유골(鷄卵有骨)을 '순화'해 '달걀유골'이라 쓰겠는가. 한데, 그러면 왜 달걀로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을까. 알고 보면 빌미는 표준사전이 제공했다.

*달걀: 닭이 낳은 알. 알껍데기, 노른자, 흰자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鷄蛋)·계란·계자(鷄子).

*계란(鷄卵): =달걀. '달걀'로 순화.

'달걀' 풀이에서 '달걀=계란'이라고 해 놓고선 정작 '계란'은 달걀로 순화한다 했으니 달걀로만 써야 한다고 착각할 수밖에…. 사실 표준사전이 순화해 놓은 말들을 보면 실제 말글살이와 너무나 동떨어진 게 많다.

'가름새(←크로스바), 값표(←가격표), 가족공업(←가내공업), 경망한 행동(←경거망동), 굶는 아이(←결식아동), 그려 냄(←묘사), 봉급 깎기(←감봉), 신매체(←뉴미디어), 엿들음(←도청)….'

대체로 이런 판이니 저 순화라는 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너무 지나치다 싶은 것을 하루라도 빨리 손보는 게 스스로 설 자리를 좁히지 않는 길일 터인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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