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 부산 나들이] 책 속으로, 시간 속으로, 숲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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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숙객만 오는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들를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하고 있는 에머슨퍼시픽㈜이 운영 중인 서점 '이터널 저니'에 마련된 청음 코너

날도 더운데 멀리 떠나는 것만이 휴가는 아니다. 도심 속에서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의외로 많다. '늦캉스'(늦은 바캉스)족이거나 '혼행'(혼자 즐기는 여행)', 혹은 방학 막바지를 보내는 유·초등생 자녀가 있는 가족을 위해 이번 주 라이프 지면은 '하루쯤 부산 나들이' 코스 몇 곳을 알아봤다.

부산의 핫 플레이스 '아난티 코브'
보물창고 같은 서점
'이터널 저니'에서
즐거운 지적 여행
카페·레스토랑에서
색다른 맛 여행도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에 자리 잡은 휴양 시설 '아난티 코브'만큼 올여름 관심을 모으는 곳이 또 있을까. 힐튼 부산(호텔), 회원제 리조트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 아난티 프라이빗 레지던스 등 숙박 시설 외에도 서점, 안티에이징 클리닉, 레스토랑, 카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애견 호텔 등 15개 브랜드가 입점한 '아난티 타운'과 바다 위의 온천 '워터 하우스' 등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부산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혹자는 "회원 전용인가요?"라고 묻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설도 많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나들이 삼아 들를 수 있는 아난티 타운 초입의 500평 규모의 서점 '이터널 저니'부터 들렀다. 사려고 생각한 책이 있어서 도서 검색대를 찾았다. 그런데 도서 검색대가 없다. 베스트셀러라는 별도의 코너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신간과 구간이 뒤섞였다. 대형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류 방법이 아니었다. 대신, 철학자들, 전쟁, 건축가의 책상, 환경, 작업실, 작가들의 선택 등 크고 작은 주제를 보여주는 책과 콘텐츠가 구석구석 펼쳐졌다. 

'철학자들'로 분류된 서가의 일부분
'철학자들'만 보더라도 고대, 중세, 근대라는 시간적 흐름을 가로 배열로 가져가면서 고대 열 맨 위 칸부터 아래로 노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관련 책이 각자의 생몰 연대를 적고 배치돼 있다. '러시아'는 고전 문학부터 어린이 도서, 러시아 정치·경제를 넘나드는 모든 장르의 책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 마르셀 뒤샹, 윤동주, 제인 오스틴,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네 명의 예술가는 아예 별도의 서가로 꾸려졌다. '청음'에선 차이콥스키 음악 '1812년 서곡' 등을 들으면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을 수 있도록 하거나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곡을 들으면서 <요요마의 실크로드> 책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서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특정 주제에 대한 문화적 경험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이터널 저니는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동안 잊고 있던, 또는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고 만들었다는 에머슨퍼시픽㈜(아난티 코브 전체 운영사) 이만규 대표의 말이 실감났다. 진열된 책들의 밀도가 낮아서 오히려 휑뎅그렁했다. 실제 500평 규모라면 3만~3만 5000권 정도는 비치되는데 이터널 저니는 2만여 권에 그쳤다. 

이터널 저니에 들른 방송인 노홍철 씨
책방에선 뜻밖의 손님도 만났다. 방송인 노홍철 씨가 송정 바닷가에서 열린 공개방송을 마친 뒤 혼자서 그곳을 찾았다. 노 씨는 "서울 이태원에서 개인 서점(철 든 서점)을 운영하다 보니 와 보고 싶었다"면서 "여기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어떤 게 좋죠?"라고 되물었더니 "(구매를)강요하지 않잖아요"라고 한다. 딱 맞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구매는 생각 이상으로 많이 일어난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서점 바깥으로 나왔다. 갑자기 배가 출출했다. 스타 셰프 김지훈의 이탈리안 요리로 기대를 모으는 '볼피노'는 예약을 안 한 터라 포기하고, 일식 다이닝과 일본 사케를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자색미학'을 들르기엔 좀 이른 시간 같아서 '라멘 베라보'에 들러서 닭 육수 기반의 시오(소금) 라멘으로 간단하게 요기했다. 배가 살짝 불러오자 기분 좋게 바닷바람을 쐬며 해변 산책로를 걷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장작불 로스팅 원두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카페 '산 에우스타키오'에 들러서 커피 맛을 보고 싶었지만 서점 내부 카페에서 이미 한 잔을 마신 터라 다음을 기약했다. 그래도 약간은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수제 맥줏집 '디스 이즈 비어'로 향했다. 여름철이라 라거 종류가 잘 나간다고 했지만 IPA 맛도 괜찮았다. 치킨 한 마리를 안주 삼아 생맥주를 한두 잔 하는 사이 졸지에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반려견을 동반하더라도 전혀 걱정할 것 없다. 반려동물 디자인 가구와 용품 브랜드로 유명한 '하울팟 부산케어센터'(051-604-7268)가 아난티 타운에 입점해 있다. 반려견 유치원은 1일 5만 5000~7만 원이지만 단순히 맡기기만 한다면 3시간 1만 원이면 된다. 이 밖에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동시에 탑승 가능한 프리미엄 패밀리 전동차 '디트로네'를 탄 가족이 타운 곳곳에 돌아다닌다. 시승 대기자가 늘면서 15분에 1만 원으로 유료 전환했지만 인기는 여전하다고.
 
이터널 저니 영업시간은 낮 12시~오후 9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9시·051-604-7222), 이터널 저니 내 키즈존에선 매주 이벤트가 열리는데 △17일 손가락 인형 만들기 △18일 러시아 인형 만들기(재료비 별도·선착순 10명 접수)가 예정돼 있다. 워터 하우스(051-604-7233)는 성인 기준 종일권 8만 원·반일 6만 원·야간 4만 원. 셔틀버스(051-604-7000)를 이용할 경우, 동해선 오시리아역 1번 출구에서 오전 9시~오후 9시 매시 40분(첫차, 점심, 저녁 시간은 30분)에 출발한다.

'올드'하지만 못 가 본 '연산동 고분군'
연산동 고분군
가야시대 무덤 18기
웅장하게 늘어서
혼자 천천히 걷기도
함께 말하며 걷기도
멍하게 있어도 좋아

이번엔 아주 '올드'하지만 의외로 가 본 사람이 많지 않은 특별한 장소 한 곳을 추천한다. 연제구 배산 능선을 따라 형성된 연산동 고분군 일대다. 지난 6월 30일 자로 국가사적 제539호로 승격됐다. 부산에선 다섯 번째로 국가사적 영예를 안았다. 문화재라고 하면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복천동 고분과는 또 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지난 주말 연산동 고분군을 찾았더니 '부산 연산동 고분군 국가문화재 승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부꼈다. 자료상으로는 연제구 연산1동 산 90-4 일대에 크고 작은 무덤이 이어지는 걸로 나와 있는데 내비게이션 검색이 안 돼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막상 도착해서 보니 연산중학교 후문 쪽 '연제 문화체육공원'을 찾거나 연제구 고분로 68번길을 따라 '혜원정사'로 올라가는 입구 지점을 떠올리면 된다.

여름 한낮의 열기가 부담스럽다면 해질 무렵 산책 삼아 걸어도 참 좋을 듯싶다. 이날도 도심 낮 기온은 30도 안팎을 오르내렸지만 막상 고분군 일대에 이르자 사방이 확 트여 있어선지 제법 선선한 바람기가 느껴졌다. 배산 숲길(둘레길 주동선 1900m·약 40분) 트레킹을 위해 찾은 인근 주민 몇몇을 제외하면 일대는 아주 조용했다. 
연둣빛 잔디가 묘한 생명력을 자극하는 부산 연산동 고분군
고분군은 생각 이상으로 웅장하기도 했다. 더욱이 봉긋봉긋 솟은 봉분과 평지를 연결하듯 뒤덮은 연둣빛 잔디는 여름 햇살을 받아 묘한 생기를 발산했다. 죽음의 공간에서 느끼는 삶의 에너지여서 더 아이러니했다. 동반자가 있다면 도란도란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걷거나 시쳇말로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무덤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멍을 때려도 좋을 듯싶은 공간이었다.

인근 주민 김은희 씨는 "연산동 고분군은 가야시대 무덤 18기가 일렬을 이루고 있는 게 장관"이라면서 "경주(천마총 대릉원 등)와 비교해도 스케일이 상당해 부산 시민이라면 한 번쯤 꼭 다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8월 추천 부산 관광지·부산시민공원 '타잔 체험'
부산시민공원
기억의 숲에서
18~20일 타잔 체험
줄 타고 나무 오르고
온 가족 신나는 시간

이 밖에 부산관광공사가 8월에 가 볼 만한 관광지로 추천한 동구와 중구의 산복도로 야경 명소를 한 번쯤 다녀와도 좋겠다. '도시 야경'을 주제로 부산 동구의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과 중구의 '역사의 디오라마 전망대', '부산타워'가 추천 관광지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난달 새롭게 문을 연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051-661-9393~4)는 미디어갤러리와 VR 망원경 등 첨단 장비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전망대 유리창으로 산복도로,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영도대교 등 부산의 야경을 볼 수 있다.

그동안 부산의 야경은 해운대, 광안리 등 해안 관광지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부산관광공사 최부림 기획전략상품개발팀장은 야경 추천에서 더 나아가 산복도로 도시민박촌 '이바구캠프'에서의 1박을 추천하기도 했다.

자세한 여행지 정보는 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www.bto.or.kr)와 만디버스 홈페이지(www.mandibus.kr)를 참고하면 된다.

한편 부산시민공원 내 플라타너스가 무성한 '기억의 숲'에선 10m 높이의 등반용 로프와 보호 장비를 갖춘 어린이들이 타잔처럼 줄을 타고 타잔처럼 나무를 타고 오르고, 나무 사이를 건너다니는 트리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다. 부산시민공원이 여름철을 맞아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특별히 마련한 체험 이벤트다.
부산시민공원이 여름철 특별 이벤트로 기획한 '트리클라이밍'(부산시민공원 제공) 모습.
트리클라이밍은 10m 높이의 등반용 로프와 보호 장비를 갖춘 채 나무를 오르거나 집라인과 구름다리 등을 이용해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가는 나무 등반 체험으로 구성된다.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전문 트리클라이머 12명이 나서 사전 안전교육도 한다.

참가 신청은 만 5세 이상의 아동·청소년 및 가족 단위 대상으로 사전 접수를 마쳤지만 현장 접수자를 위해 정원의 반 정도는 비워둔 상태다.

이미 접수 마감한 6회 차(오전 10시, 11시, 오후 1시, 2시, 3시, 4시·회당 15명) 외에 5회 차(오전 10시 30분, 11시 30분, 오후 2시 30분, 3시 30분, 4시 30분·회당 15명) 225명은 현장에서만 접수를 받는다. 무료. 문의 051-850-6022, 6047.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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