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리 모두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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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에겐 공간의 제약 또한 극복의 대상이다. 20세기에 들어와 공공의 장소인 거리와 광장마저 작품의 주요 무대로 떠올랐다. 생산주의 예술론을 주창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거리를 우리의 붓으로 만들자. 광장이 우리의 팔레트가 되게 하자"고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서구에서는 공적으로 개방된 공간에서 그림 및 조각 전시, 거리 퍼포먼스, 포스터, 낙서 및 벽화 등이 다채롭게 출현했다. 이른바 거리미술(Street Art)의 등장이다.

거리미술의 간판으로 꼽히는 게 그라피티(Graffiti)다. '긁다' '긁어 새기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그라피티는 벽이나 화면에 스크래치 기법이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는 방법으로 그린 낙서 같은 그림이나 문자를 뜻한다. 고대 동굴 벽화 등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지만, 현대에 와서는 1960년대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과 소수민족의 반항적이고 대안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는데,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등의 작품 활동으로 현대미술에 당당히 편입되기도 했다.

부산 또한 거리미술 혹은 그라피티 하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도시다. 힙합, 인디밴드를 비롯하여 독립영화, 퍼포먼스, 그라피티 등 다채로운 대안예술이 항도 부산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활짝 꽃피었기 때문이다. 온천천을 따라 전국 최대 규모의 그라피티 작품이 들어서기도 해 부산은 한동안 '그라피티의 성지'로 대접받았다. 수영구 민락어민활어집판장 주차타워에 그려진 '어부의 얼굴'은 부산을 대표하는 그라피티 벽화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어부의 얼굴'을 그렸던 스트리트 아티스트 'ECB'(본명 헨드릭 바이키르히)가 영도구 대동대교맨션 벽에 그라피티 벽화 '우리 모두의 어머니(Mother of Everyone)'를 최근 완성해 화제다. '어부의 얼굴'이 2012년 어부인 박남세 씨를 모델로 삼아 그렸다면,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영도 수리조선소에서 쇠망치로 선박에 붙은 조개류와 녹 등을 제거하던 '깡깡이 아지매'를 형상화했다. 가장 평범한 인물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보여 주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수영 어부와 영도 깡깡이 아지매가 이제는 작품이 되었다. 임성원 논설위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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