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에 맞선 익살·유머·조롱의 시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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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민주주의:시위와 조롱의 힘/스티브 크로셔

2007년 독일 로스토크. G8 국가들의 정상 회담장 앞에 서 있는 경찰 기동대와 광대 분장으로 그들을 조롱하는 시위자들. 산지니 제공

# 장면 1. 한 흑인 여성은 당당하게 서 있고, 맞은 편 무장 경찰은 누군가가 밀기라도 하듯 뒤로 물러난다. 마치 흑인 여인이 무장 경찰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여성은 당당하다.

# 장면 2. 줄지어 서 있는 경찰 기동대 주변에 이상한 군인 옷을 입고 광대 분장을 한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의 표정도 경찰 기동대 못지않게 엄숙하지만, 왠지 누군가를 조롱하고 있는 듯하다.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홍콩 우산혁명·인간띠 잇기…
'변화를 위한 창의적 행동' 소개

'시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이 떠올리는 모습은 뭔가? 화염병, 머리띠, 자욱한 연기, 피, 흥분한 군중, 주먹, 폭력…. 이런 것을 상상했다면, 이건 분명 앞의 두 장면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두 장면 또한 시위 현장의 모습들이다.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스티브 크로셔의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은 우리의 편견을 깨부술 수 있는 새롭고 이색적인 시위 방식과 현장을 담아낸 책이다. 유쾌하면서도 익살이 있고 조롱이 있는 시위 현장이랄까.

저자는 가까이는 중국에서부터 미국, 유럽, 중동까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난 다양한 시위 현장 모습을 7가지 주제로 묶어 소개한다. 특히 세계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 현장의 모습을 담은 79개의 사진은 독자들이 짤막한 글만으로는 그려보기 힘든 사람들의 '변화를 위한 창의적인 행동'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독재자들은 흔히 박수갈채를 갈망하고 요구한다. 하지만 박수갈채가 때로는 시위가 되기도 한다. 2011년 벨라루스에서는 시위자들이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향해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뒀다. 이런 불충한 충성심을 막기 위해 한때 벨라루스 정부는 대통령이 연설할 때 손뼉 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대통령 추종자들조차 손뼉을 치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14년 10월 홍콩. 우산으로만 무장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대표를 뽑을 권리를 요구하며 우산을 쓰고 경찰 기동대와 맞섰다. 시위자들이 쓴 우산은 내리는 비뿐만 아니라 시위자들에게 쏘는 최루 가스를 막는 역할을 했다. 시위자들은 쇼핑하러 가자고 외치며 거리로 모여들었다. 이게 소위 홍콩의 우산혁명이다. 우산혁명은 홍콩의 행정장관 선거가 간선제로 실시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다.

이외에도 샌드위치 먹기와 책읽기, 빨간 모자를 쓴 난쟁이들의 혁명, 변화를 위한 침묵(스탠딩 맨), 빈 의자 놓기, 인간띠 잇기 등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다양하고 기발한 시위 방식이 이 책에 가득하다. 물론 그 방식들은 너무나 단순하고 연약하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하고 연약한 시위가 때로는 더 많은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최근 대한민국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가? 촛불집회가 가져온 변화와 그 힘을.

시위 현장에서 총검은 폭력을 억압할 수 있다. 하지만 평화, 비폭력엔 약해지곤 한다.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때리거나 총검을 휘둘러야 할 대상이 비폭력으로 대응하면 매우 불안해 한다. 비폭력의 시위 앞에 총검은 위협을 가할 명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얻게 되는 교훈 하나. '실제 가해지는 폭력이나 위협성 폭력은 대개 비폭력이 가진 잠재적 힘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거나 그들에 의해 약화된다'고.

권위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익살(혹은 조롱)과 유머, 웃음의 시위 방식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불손함은 자유를 쟁취하는 길이자 이에 대한 유일한 방어책이다." 스티브 크로셔 지음/문혜림 옮김/산지니/184쪽/1만 9800원.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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