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우리 시대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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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평론가는 <빛의 향연>을 통해 문학과 영화, 연극을 넘나들며 폭넓은 식견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영화 '동주'. 부산일보 DB

문학과 영화, 연극을 오가며 다양한 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남석(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평론가. 그가 오랜만에 새 평론집으로 독자를 만난다. 영화평론집 <빛의 향연>(사진·연극과 인간)이다.

2008년 출간한 평론집 <빛의 유적> 후속작 격인 이번 평론집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따라'라는 부제에 걸맞은 영화가 쉴새 없이 이어진다. 책은 사랑과 상처, 경계와 깊이, 역사와 폭력, 배우와 연기, 미학과 도전 등 5개 장으로 이뤄졌다. 책에 담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스민 시간과 기억은 독자에게 색다르게 다가온다.

김남석 평론집 '빛의 향연'
'동주' '동물원…' '밀정' 등
알던 영화 새롭게 보게 도와

책은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등 일명 '비포' 시리즈를 비롯해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등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 '해리포터' 시리즈,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등 그동안 알고 있던 영화를 좀 더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노년을 화두로 한 '할머니는 일학년'이나 동물원이 지닌 함의가 돋보이는 '동물원에서 온 엽서'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은교'에 대해서는 "'지고한 경지/젊은 매력'의 구도를 관념적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그 안에 펼쳐질 무수한 경우의 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예리하게 분석한다.

동물원에서 온 엽서
문학과 영화를 오가는 그의 탁월한 평론은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영화 '덕혜옹주'를 보면서 일제 강점기의 문학과 서사를 이끌어낸다. 김 평론가는 "일제 강점기 팔려가거나 잃어버린 여성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가에 대해 한국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숱한 서사물들은 본격적으로 고민한 적이 거의 없다. 참고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허진호는 급하게 그 대답을 김장한으로부터 찾고자 했고 그 대답이 온전하게 정립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멜로드라마적 착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동주'에서도 그의 식견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김 평론가는 <윤동주 평전> 등 다양한 학문적 근거를 통해 "영화는 윤동주와 그의 시를 연구한 숱한 연구성과와 주목할 만한 논문들이 모여 생산된 창작적 결실"이라고 평하는 동시에 송몽규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도 숨기지 않는다. 책 말미에 다시 한번 영화를 다루며 2016년 부끄러움으로 거리에 나와야 했던 대중의 자화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우리 선희
'암살'과 '밀정'도 같은 맥락이다. 교묘하게 압제 되고 자유를 온전히 실천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을 빗대며 "오래된 역사에서 마냥 지켜보아야 했던 유린당한 육체를, 지금 이 시점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숙고와 대책이 필요하다"거나 "역사는 과거를 보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보는 행위"로 규정한다. 오늘날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역사 영화들이 숙지해야 할 대목이다.

"향연이 정말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면, 빛은 세상에서 거대한 잔치를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향연 속에서 빛과 기억이 어우러진 세상을 꿈꾸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라도, 당분간 빛의 향연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믿고 싶었다"는 김 평론가의 바람. 어쩌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접하는 또 하나의 길일지도 모른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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