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해운·조선 살릴 마중물 제대로 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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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균 경제부 해양수산팀장

"우리나라에서 선박 건조하기 진짜 어렵습니다. 우선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요. 여객선 담보 가치는 거의 제로 수준입니다. 금융권에서 RG(선수금 환급 보증)도 좀처럼 해 주지 않으니 중소 조선소는 수주를 해도 배를 만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만난 해운산업 종사자가 한 푸념이다.

국내 해운·조선업이 침체 상황이라는 건 상당수가 아는 사실이다. 2008년 이후 시작된 세계 해운업계 불황과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는 국내 해운업에 큰 타격을 줬다. 선박 수요자인 해운업계가 받은 충격은 선박 공급자인 조선업계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절벽을 맞아야 했다. 선박 신조와 해체 시장으로 맞물린 두 산업은 한쪽이 무너지면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운·조선 밀접하게 연계된 산업
각자도생보다 상생할 방법 찾아야
자국선 자국 건조, 수월한 RG 발급
한국해양진흥공사 역할 중요해져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해운업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 중 하나다. 게다가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 운송은 99%가 해상을 통해 이뤄진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가 해운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조선업도 기술 경쟁력을 갖췄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할 수 있다. 해운업이나 세계 경제가 활기를 되찾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지금이 해운·조선 재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세계 경제 흐름이 점진적으로 성장할 기미를 보여서다. 투자와 제조업 분야가 회복세다. 해운업도 수급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장기 불황으로 공급이 위축되면서 운임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세계 각국 조선업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공급 규모가 대폭 축소돼 앞으로 수급 여건이 호전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도 최근 동향 분석을 통해 해운·조선업 경기 회복은 해상 운임과 선박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도 수출입 화물의 원활한 수송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운업과 조선업을 다시 성장시키려면 판을 새로 짜야 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해운·조선업 정책은 한마디로 각자도생이었다. 두 산업을 각각 성장시키는 전략이었다. 해운과 조선업이 긴밀하게 연계된 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연간 조선소 건조량 중 국내선은 5.3%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외국 선사가 대부분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니 금융 지원도 그쪽으로 특화돼 있다.

이제 이래서는 안 된다. 해운과 조선업의 연계성을 활용한 정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방법 중 하나는 자국선의 자국 건조 정책이다. 앞으로 설립될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바라는 공사의 역할은 이렇다. 공사는 국내 해운업체의 낡은 선박을 매수해 수급을 조정하고 호황기에 선박을 판다. 대신 국내 조선소에 고효율 선박을 발주해 조선업 재도약을 지원하고 신조 선박을 국내 해운업체에 빌려줘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공사는 세계 해운 조선 경기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사가 RG 업무를 취급하는 일도 중요하다. 외국 선사들이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 RG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서다. RG란 조선소가 기한 내에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때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물어 주는 지급 보증제도다. 국내 은행은 침체한 조선업 지원에 위험 부담을 느껴 RG 발급을 꺼리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의 RG 취급 업무도 중장기 과제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래서는 조선업 재도약이 어렵다. 공사 업무에 RG 발급을 넣어야 한다는 지역 상공계요청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운·조선을 다시 일으켜 보자는 바람을 안고 설립된다. 현재 해운·조선업계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면밀하게 살펴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공사가 해운·조선 재도약의 제대로 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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