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배급 나선 당찬 20대 청년들 '씨네소파' 협동조합 "멀티플렉스 게, 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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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사실 쏭쏭 대표의 감바스에 넘어갔어요. 새우로 만든 요리 감바스가 너무 맛있었거든요." 홍보 마케팅 기획 업무를 하는 '딩딩' 최예지(26) 씨가 까르르 웃었다. 옆에 앉은 '슈슈' 노수진(25) 씨도 "맞다 맞다"며 물개박수를 쳤다.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小波)' 쏭쏭 성송이(26) 대표이사의 요리 솜씨가 상당한 모양이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행정과 경영 지원을 맡은 '룡룡' 오용택(28) 씨가 언제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씨네소파가 배급한 영화가 100만 관객이 드는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독립영화 감독 등 5인 의기투합
지난 5월 법인 등기 마쳐
외면받는 독립영화 홍보하고
상영관 확보 위해 불철주야

영도 배경 다큐 '그럼에도…'
전국 8월 개봉 첫 작업 '혼신'
30개 영화관 동시 상영 목표
"100만 관객 영화도 나올 것"

■영화가 좋은 청년들 '만찬 결의'

독립·예술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만든 협동조합 씨네소파의 청년 운영진들. 왼쪽부터 노수진 씨, 성송이 대표이사, 최예지 씨, 오용택 씨.
이들은 이름 앞에 두 음절의 예명을 굳이 썼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으라고 그런단다. 예쁘게 느껴졌다. 조금은 특별한 영화배급협동조합의 발기인은 모두 5명. 이들 4명과 함께 독립영화를 만드는 김영조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2016년에 만든 한국 독립·예술 영화가 모두 798편이에요. 그런데 개봉한 영화는 겨우 103편이죠. 고작 12.9%만 대중과 만날 기회를 얻는 거죠. 안타까운 일이죠." 쏭쏭 대표는 씨네소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도 흰여울길 영화 촬영 장면
씨네소파는 독립·예술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 영화와 사람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모이게 하는 영화의 광장을 꿈꾼다. 협동조합 이사장이자 씨네소파의 대표이사 직함을 가진 쏭쏭 대표는 관련 분야에서 꽤 이름이 난 프로듀서다.

영화배급 협동조합을 시작하기 전 쏭쏭 대표는 부산 중앙동 모퉁이극장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다. 모퉁이극장은 직접 영화를 상영하고 또 관객들과 영화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부산의 많은 영화인들과 이곳에서 만났다. 지금은 같은 조합원인 김 감독과도 여기서 소통할 수 있었다. 쏭쏭의 깔끔한 일솜씨에 반한 김 감독이 부산 영도의 사라지는 것들을 담은 다큐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배급을 부탁했다고 한다.

쏭쏭 대표는 김 감독의 부탁에 얼떨결에 "그러마!" 약속해 버렸다. 그리고 내친김에 인재들을 모았다. 2014년 21분 4초짜리 다큐멘터리 '레코드'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슈슈 노수진 감독과 디자이너이자 다양한 브랜드 제작 작업을 해온 딩딩 최예지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룡룡 오용택 씨도 포섭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이 모인 자리에 쏭쏭 대표는 가장 자신 있는 요리 감바스를 내놓았다. 한 끼의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첫 배급 영화는 영도 배경 다큐
해운대구 협동조합 페스티벌 홍보 부스. 씨네소파 제공
올해 2월 야심 찬 '감바스 만찬' 모임을 시작으로 3월엔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했고, 4월엔 설립 신고와 인가를 받았다. 5월엔 법인 등기를 마쳤고 지난달엔 국세청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 첫 작업이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90분짜리 독립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배급이다.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상영관을 찾지 못했다. 씨네소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전국 동시 개봉을 위해 혼신을 기울였다. 다큐를 만든 경험이 있는 슈슈 씨의 경험도 소중했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봤자 상영은 극장의 판단이죠. 독립영화가 상영관에 걸리기 위해선 녹음과 음악 저작권 문제 해결 등 후속 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것도 감독이 하긴 힘들어요." 슈슈 씨는 부산독립영화제만 해도 매년 100편의 영화가 나오지만 개봉은 극소수라고 말했다.

특히 배급은 돈이 많이 드는데 영화를 통한 수익이 날지 안 날지 모르니 투자자도 없다는 것.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영화 세상'이지만 1등 한 독립영화도 멀티플렉스나 대형 배급사에서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 스틸 컷인 점바치 할머니
최근 이들은 첫 배급 영화의 포스터 작업을 했다. 영화 배급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서울 충무로에 집중돼 있으니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만드는 부산의 업체를 찾기도 쉽지 않은 형편. 디자이너 딩딩 씨는 동료들과 수소문 끝에 토종 부산 제작사 눈(NOON)을 만났다. 그리고 의기투합해 첫 영화의 홍보 준비를 같이하고 있다.

딩딩 씨는 고향도 출신 학교도 서울인 이른바 무연고 유입 청년. 2016년 겨울에 내려왔다가 따뜻한 부산이 좋아 그만 정착해버렸단다. 그동안 수영구 마을기업인 광안리 '오랜지바다'에서 일했고, 부산청년정책네트워크의 로고 등 홍보물 제작도 맡았다. 오랜지바다에서 예술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했던 경험으로 씨네소파에서도 잘 될 것으로 믿는다. 딩딩 씨는 '부산은 자립하기 괜찮은 곳'이라며 엄지를 척 올렸다.

사실 독립·예술영화보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총각 룡룡 씨는 순전히 협동조합 활동의 매력에 빠져 동참한 경우. 우선 친구가 좋고, 쏭쏭의 음식이 좋고,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 합류했다고 말했다.

■영화로 사람과 만나려 한다 
영화 스틸 컷인 해녀
이들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8월 상영을 계획하고 두 달 전인 6월에 상영관에 협조 요청을 했던 것. 그런데 보통 영화는 개봉하기 4~6주 전에 상영 결정이 난다고 한다. 일찌감치 상영 요청을 받았던 극장 관계자가 당황한 것은 당연.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드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전국 개봉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우선 8월 24일 부산영화의 전당, 국도예술관, 가톨릭센터 아트시어터C&C, 부산 롯데시네마 몇 곳에서 선 개봉한다. 이어 8월 31일에는 인천 영화공간 주안, 서울 인디스페이스 등 전국 20개 상영관에서 동시 개봉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직 8월까지는 날짜 여유가 있어 목표를 좀 크게 잡았다. 전국 30개 상영관에서의 동시 개봉이 목표다. 경기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G시네마에 개봉관 지원도 요청한 상태. 대형 영화는 투자사가 주로 배급사를 지정하지만 독립영화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배급회사의 중요성이 크다. 또 그만큼 영화 홍보도 중요하다.
영화 스틸 컷인 깡깡이 노동자.
"우리가 배급한 영화를 본 관객들과 소통하려고 해요. 관객들과 수다회를 열거나 상영 이후 영화 감상평 등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서 다음 영화를 준비할 계획이죠." 쏭쏭 대표가 홍보 계획을 말했다. 사실 독립 영화는 100만 관객이 쉽지 않다고 했다.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나 최근 '노무현입니다' 정도가 대박을 터트린 것.

"영화 상영 후 감독을 초청해 GV(Guest Visit)를 하며 관객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것이고요. 감독님과 영화의 현장인 영도 하리 해변도 찾을 예정이죠. 영화를 좀더 알리기 위해 개봉 크라우드펀딩(https://tumblbug.com/stillandall)도 준비하고 있어요." 쏭쏭 대표는 지금은 멀티플렉스를 이길 수 없지만, 좋은 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네소파는 우리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고, 더 깊이 알게 할 겁니다. 제작투자요? 100만 영화 터트리면 하죠!" 이들의 '작은 파도'가 언젠가 태풍처럼 몰아치는 꿈을 함께 꾼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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