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철수 작전' 스크린으로
진녹색 군복을 입은 청년들 머리 위로 투항을 회유하는 독일군 '삐라'가 뿌려진다. 적들의 전투기는 굉음을 내며 연신 폭탄을 토해낸다. 철수를 기다리며 끝없이 줄지어 있는 병사는 어림잡아 40만 명. 이런 와중에 앳된 얼굴의 두 청년이 부상자를 실은 들것을 들고 뛰기 시작한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생각 뿐. 배를 타야 하는데 부두엔 어느 새 인산인해다.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가기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배 밑에선 독일군의 어뢰까지 터진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고향,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쟁 실화 완벽한 재현
긴장의 끈 놓을 수 없다
'시간 연출 마술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덩케르크'는 이렇듯 도입부부터 관객들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펼쳤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다이나모 작전)을 그린다. 전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이 SF의 세계를 펼쳐놓았다면 이번 작품은 전쟁 초반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자국 군인들을 철수시켰던 실제 사건을 스크린에 옮겼다. 단순히 사건을 모아 정렬시킨 것이 아니다. 해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란 새로운 구성으로 펼쳐놨다. 각각의 고립된 상황을 서로 다른 시간의 척도에서 보여줘 관객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어뢰 피격으로 물이 가득 찬 선실을 빠져나가려 발버둥칠 때, 침몰하는 배에서 나온 기름 때문에 바다 위가 불바다가 되는 장면은 마치 참극 한가운데 있는 현장감을 선사해 몸서리를 치게 만든다.
감독은 제작 단계부터 "최대한 실제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현실과 비슷한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65㎜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고, 디지털 효과를 최대한 배제했다. 철저한 자료조사는 물론 참전용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이 뿐 아니다. 스크린을 채우는 배우들은 무려 1300여 명이나 되고, 의상 또한 대여하지 않고 모두 제작했다. 실제 작전에 참여한 민간 선박과 전투기까지 동원해 당시 상황을 밀도 높게 뽑아냈다.
'덩케르크'는 영국군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한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전한다. 6·25 한국전쟁 당시 우리의 '흥남철수작전'과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 당시 처절했던 모습은 부산 출신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 초반부에 그려져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여느 영국인처럼 덩케르크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는 놀란 감독의 말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화려한 서사 없이도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남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