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싸움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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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변호사

평소 협주곡을 즐겨 듣는다.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다 어느 순간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만들어 내는 소리에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협주곡을 뜻하는 '콘체르토(concerto)'는 '투쟁하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해 '협력하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정설이다. 투쟁과 협력. 전혀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두 단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양립 가능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마치 협주곡처럼.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언뜻 투쟁하듯 대결 구도를 펼치지만 결국엔 서로 협력하여 감동의 음악을 만들어 내듯이.

정치는 필연적으로 정쟁을 수반한다. 싸우지 않는 정치는 죽은 정치와 다름없다. 정쟁, 논쟁, 싸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싸우는 것이 정상이고 싸워야만 하는 것이 정치다. 문제는 싸움의 품격과 방법이다. 한국정치사를 돌아보면 정치인들 스스로가 싸움의 품격을 잃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정제되지 못한 말, 근거 없는 원색적인 비난, 반대를 위한 반대, 과격한 행동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저급한 정치 수준을 드러내는 행태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물론 전체가 아닌 일부 정치인의 모습이겠지만 그만큼 정치인의 품격과 수준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정쟁 수반
싸우는 태도와 방법이 문제

靑·與 부적격자 감싸기는 잘못
野 '반대 위한 반대' 비판받아야

'투쟁'과 '협력'은 양립 가능
국민 이익 위해 정치 수준 높여야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어느덧 두 달이 훌쩍 지났다. 대외적으로 보면 한·미정상회담과 G20 정상회의를 거쳐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지만, 대내적으로 보면 아직 내각 구성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채 발걸음이 더디다. 근본적으로는 인사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결과 흠결 있는 인물을 장관으로 추천한 청와대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탄핵으로 인해 조기에 조급하게 치러진 선거라 공식적인 정권 인수 절차를 거치지 못한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선거기간 내내 내걸었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변명으로 들린다. 야당 시절 같은 논리로 사사건건 반대를 외치다 여당이 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로 규정했던 '5대 원칙'을 파괴하며 부적격자들을 감싸고 두둔하는 여당의 '내로남불'식 태도 역시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이에 맞서는 야당의 품격에도 그리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야당의 행태에 국민은 더 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청와대가 추천한 인물은 어떻게 해서라도 낙마시키고 보겠다는 선하지 않은 동기로 청문회에 임하다 보니 온갖 고성과 감정 섞인 단어들이 오간다. 질문의 수준도 저급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일단 일은 시작하게 해 주고 그 다음에 잘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건전하게 비판과 견제를 하는 것이 야당의 책무일 텐데 아예 일 자체를 시작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서 있으니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고 풀어야 할 민생 현안도 산적해 있는데 국회의 시계만 멈추어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어떻게 하면 싸움의 품격을 높일 수 있을까. 힌트는 협주곡에서 찾을 수 있다. 협주의 목적은 투쟁하듯 협력해 하모니를 만들어 듣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정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인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투쟁하고 협력할 때 정치의 수준은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그런 수준 높은 싸움판에는 모든 국민이 박수를 치며 구경을 나설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협치'를 화두로 내걸었다. 먼저 대화하고 협조를 구하겠다며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답을 정해 놓고 형식적으로 동의만 구하는 수준이라면 손을 내민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야당 역시 설령 대통령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국정 운영을 방해하고 그로 인한 반사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협치를 거부한다면 그 결과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다. 협주는 이미 시작됐다. 대통령은 지휘봉을 들고 단상에 올랐다. 여당과 야당은 아슬아슬하게 밀고 당기며 투쟁하고 협력한다. 부디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객석에 앉은 국민에게 감동의 연주를 들려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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