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녀상 조례 제정해 놓고 시-구청 서로 미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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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의회에서는 지난달 30일 진통 끝에 '평화의 소녀상' 조례인 '부산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은 철거되거나 훼손돼도 여전히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없는 상태다. 조례 제정 이후 보름 넘게 지났으나 부산시가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조례 7조는 부산시장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 관한 조형물 동상 등 기념물 설치 지원 및 관리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러나 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은 설치 과정이 불법이기에 공공조형물 지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조례 제정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조례가 추진된 것은 맨 먼저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소녀상에 대한 공공조형물 지정'은 강원도 원주시가 2015년 6월 처음 결정한 이후 충북 제천시, 경기도 안양시, 서울 종로구 등으로 확산 중이다. 시도 이 대열에서 빠져선 안 된다. 옛 부산항이 강제 동원의 출발지였다는 점에서 부산에는 2015년 개관한, 전국 유일의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까지 있다. 이런 부산은 앞장서도 모자랄 판이다.

시와 동구청이 책임 미루기를 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다. 서로 "관리권을 동구청에 위임했다" "시에서 공문 한 장 받은 적이 없다"며 떠넘기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일부 시의원들도 소녀상의 공공조형물 지정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는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 등이 깔려 있을 것이다.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발을 빼고 있을 수 없다. 새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법도 이전 정부와 달라지지 않았는가. 서울시와 종로구는 협의하면서 소녀상을 설치하고, 조례도 만들고, 공공조형물로 지정까지 했다. 부산은 늘 이를 뒤따라가고 있는 모양새다. 시 조례를 제정한 것은 그게 시민의 뜻이라는 말이다. 시민의 뜻을 섬기는 한발 앞서 나가는 부산시의 '역사적인 행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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