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심심풀이 화투가 산복마을 어르신들 문화예술 교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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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나눔공동체 '이마고'가 주관하는 '놀이하는 산복마을: 호모 화투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팀을 짜서 '거대 화투 놀이'를 즐겁게 하는 모습. 강선배 기자 ksun@

화투가 놀이라는 생각은 진작부터 했지만 화투 놀이가 문화예술교육으로 거듭날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는 '아하!' 싶었다. 오히려 이런 활동이 새로운 놀이문화 콘텐츠로써 더 많은 보급 경로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부산문화재단은 2009년부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생활 밀착형, 주민 참여형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총 16개 단체에 2억 8000만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지식나눔공동체 '이마고'에서 4월부터 진행 중인 '놀이하는 산복마을: 호모 화투스' 교육 현장을 다녀왔다. 다른 활동은 표로 정리했다.

부산문화재단 지역특성화 교육
생활 밀착·주민 참여 콘텐츠 보급

친숙한 화투 매개로 문학·미술 등
예술 체험하고 마을공동체 활성화

■화투로 '예술'하는 어르신

지난 5일 오전 10시 부산 중구 망양로의 산복도로 커뮤니티 문화센터 '금수현의 음악 살롱'. 인근에 살고 있는 60~80대 할머니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라며 인사를 건네는 주강사 황정미 '이마고' 대표의 말에 할머니들은 공간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예~"라고 대답하면서도 이미 손은 각자 작업하기에 바쁘다.

이날 프로그램은 '거대 화투 만들기로 자신감 쑥쑥!'. A4용지 크기에 인쇄된 다양한 밑그림을 골라서 각자 취향대로 풀칠을 하고, 손으로 일일이 찢은 한지를 여러 가지 색깔로 붙여 나가는 작업이다. 또 다른 주강사 안혜진 한국화가의 말처럼 한 번도 미술을 배워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할머니들이 만들어내는 컬러 감각은 놀라웠다. 몸으로 체화된, 삶의 경험이 반영된 오묘한 색감이었다.

지난주 작품을 들여다보던 김금녀(67) 어르신은 "어쩐지 이쁘다 했더니 김금녀가 한 거네~"라며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다들 '까르르' 넘어간다. 그 와중에도 "난 좀 수월한 거로 할래~"라며 쉬운 밑그림을 요구하는 분, "잘하면서 백지 또 그란다!"면서 핀잔을 주는 어르신 등으로 각양각색이다.

작업을 하다가도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할머니들은 온몸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호모 화투스를 만든 배경

황 대표가 지역특성화 사업을 생각하고, 화투에 주목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이제는 자립한 '매축지 할머니 문화사업단'을 운영해 본 경험자로서 원도심 산복마을에도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화투놀이는 이 동네 어르신이 제일 좋아하는 여가 활동이었고, 이를 미술놀이·게임놀이·인문학 등으로 확대해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술로 승화시켜 주민 자생적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단다.

확실히 할머니들은 꽃도 있고, 새도 있고, 삶도 있고, 놀이도 있는 화투를 이용한 활동에 편안함을 느꼈다. 이구동성으로 "우리 동네에서 이런 걸 하니까 좋다"고 했다. 지금까진 먹고사는 게 바빠서, 어디 가서 무엇을 배운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는 할머니가 대부분이었다. 남편도 없이 아이를 키우느라 영도 조선소에서 하루 종일 '깡깡이' 일을 했고, 그러다 귀가 잘 안 들리게 된 백만순(83) 어르신은 이날따라 보청기를 빠트리고 왔지만 보조강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활동에 몰입했다.

안 강사는 "어르신들은 소근육 사용을 잘 못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한지와 풀의 질감도 느껴 볼 수 있고, 일일이 한지를 손으로 찢는 작업을 통해 두뇌 활동도 자극할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총 20차시로 진행되는 '호모 화투스'는 △화투 도안 색칠하기 △꽃들의 전쟁, 화투 속 꽃 알아보기 △나만의 화투 만들기 △화투 율동 △내 얼굴이 들어간 화투 자화상-내 인생은 똥광! 비광! △양말 화투 인형극 등 문학, 역사, 미술 활동을 두루 아우르게 된다.

■10월 마을 잔치 땐 성과물 전시

거대 화투 만들기를 마무리한 뒤엔 팀을 짜서 거대 화투 놀이도 했다. 황복아(71)·김금녀·이정순(71) 3조로 나누고, 오형란(85) 어르신은 '깍두기'가 됐다. 가짜 돈 '고루'도 배분했다.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진짜 돈도 아닌데 할머니들은 '목숨' 걸고 화투를 쳤다.

낮 12시가 넘어가면서 주최 측에서 준비한 간식을 다 함께 먹으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들의 일상엔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향수가 넘쳐 났다. 부산역전 대화재, 사라 태풍, 심지어 산복도로 일대의 울창한 나무는 올해로 마흔아홉이 된 당시 덕원중 2학년 아들과 같은 학년 학생들이 오전엔 공부하고, 오후에 '동원'돼 심은 나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황 대표는 "오는 10월 마을 잔치 땐 어르신의 표현예술로 승화된 미술 전시회도 열고, 인형극 공연도 하겠지만 향후엔 지역 연구 활동과도 연계해 '산복도로 작은 역사 듣기' 등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역특성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민경 씨는 "이 사업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벗어나 지역 주민과 예술가의 소통을 기반으로 지역의 자생적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의 문화공동체에 이바지하고 있지만 초창기 예산이 지속적으로 동결돼 16개 구·군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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