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김동준 부산시체육회 사무차장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영원히 못 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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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년 시절 열정을 모두 불태우게 해 줬으니 제가 되레 부산시체육회에 감사해야죠."

지난달 30일 정년을 마치고 '인생 2장'의 막을 올린 김동준 전 부산시체육회 제1사무차장의 퇴임 소회다. 공채 1기로 출발해 무려 37년 5개월을 시체육회에서 근무한 김 사무차장은 '부산 아마 체육의 어머니'로 통한다. 시체육회를 거쳐 간 숱한 사무처장들을 보필하며 부산 아마추어 체육계의 대소사를 도맡아 챙겨온 인물이다.

공채 1기로 37년 5개월 소임
잘 성장한 선수들 보면 뿌듯

"노하우 활용 '인생 2막' 준비"

충남 공주 출신인 그의 꿈은 한국전쟁 당시 공군 장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을 준비해 온 꿈은 신체검사에서 낙방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적록 색약 판정으로 탈락한 거예요.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한동안 방황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에 왔다가 부산시청에 들어갔는데 게시판에 붙어있던 시체육회 공채 공고가 눈에 들어왔죠.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또 인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고 말했다.

인생의 3분의 2를 부산 아마 체육의 부흥에 힘써 왔는데, 그중에서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는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한다. 대만 가오슝과 치열한 유치전 끝에 따낸 '메가톤급 스포츠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유치위원회에 총무과장으로 파견돼 실무를 담당했던 김 전 사무차장은 "당시 대만이 외환 보유고가 대단해서 대표단이 찾아오면 컴퓨터 선물에 벤츠 의전까지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를 펼쳐 난감했었다"며 "동아시아 빈국 대표단 중에는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도 김 전 사무차장을 비롯해 부산 유치위원회 위원들은 부산을 찾은 대표단을 요트에 태우고 오륙도 일대를 돌며 진심 어린 유치 활동을 펼쳤고, 결국 가오슝을 따돌리고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했다.

그는 "지금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과 홈플러스 아시아드점 자리가 부산 아시안게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는데 이렇게 변했다"며 "부산 스포츠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킨 아시안게임 유치에 미력하나마 '밀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나의 생애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설명했다.

시체육회 초임 시절부터 뒷바라지했던 선수들이 성장해 훌륭한 지도자가 돼 다시 후진을 양성하는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그도 이제 새 인생을 시작할 도약대에 섰다. 김 전 사무차장은 "당장 첫 직장이었던 시체육회에서의 시간은 끝났지만, 서울 올림픽과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위원회 활동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더 값지게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분명 찾아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조직위와 2000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회 조직위 등에서 파견 근무를 한 바 있다. 김 전 사무차장은 부산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고, 대통령 표창 1회, 체육부장관 표창 1회,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장 표창 1회, 대한체육회장 표창 4회, 부산시장 표창 2회, 부산시체육회장 표창 3회 등 수많은 수상 경험을 갖고 있는 엘리트 체육 전문가이다.

 글·사진=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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