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코닥의 반면교사(反面敎師)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대현 사진부장

가끔 신문에 실린 사진을 구입하고 싶다는 독자의 문의가 온다. 그런데 파일 형태로 판매한다고 알려 드리면 어르신들은 난감해한다. 그분들에겐 사진을 파일로 산다는 게 그리 익숙하지 않다. 기존의 필름이나 인화지 형태를 훨씬 편안하게 느낀다. 그래서 일부 인화지 형태로 제공하기도 한다. 인화지나 필름 형태는 사진이 발명된 1839년 이후 최근까지 유통됐다. 디지털 '파일'로 대체된 것은 불과 20년이 채 안 된다.

예전 인화지나 필름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 지금이야 예전만 못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체전은 명성이나 규모에서 가히 전국적인 큰 행사였다. 당연히 마감해야 할 '사진 원고'도 많았다. 당시 '첨단'이었던 필름 전송기는 사진 1장을 본사에 보내는 데 30분이 걸렸다. 사진 10장만 보내려 해도 하세월이었다. 열 받은 전송기가 '에러'라도 일으키면 급한 마음에 기차 편으로 필름을 보내야 했다. 역으로 달려가 아무 탑승객이나 붙잡고 부산역으로 마중 나올 다른 기자에게 필름을 전해 달라고 애걸해야 했다.

필름 시대 이끌던 강자 코닥
기득권 지키려다 '공룡 신세'

변화는 언제나 당대의 화두
겸손함과 용기, 생존의 필수 미덕


이 필름 '파발꾼'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탓에 본사에다 팩스로 시말서를 보내야만 했던 기자도 있었다.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사진을 공유하는 요즘, 정말 '전설' 같은 필름시대의 이야기다.

필름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130년 된 한 필름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에 대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필름만 만들다 파산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내놨고, 1976년엔 미국 필름 판매의 90%, 카메라 판매의 85%를 점유했다. 또 1991년부터는 고가의 DSLR 카메라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기로 급속한 전환이 일어났던 1990년대 말부터는 고품질의 스캐너와 프린트도 연이어 출시했다. 이런 기업이 2012년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쓰러졌다. 인류에게 새로운 문화를 안겨주었던 '코닥(Kodak)'의 이야기다.

나름대로 시대의 변화를 예측했고 디지털 영상 분야에서 선구자적 위치를 누렸던 '코닥'의 슬픈 운명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왜 코닥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상용화 중지를 결정했을까. "필름 사업을 위협할 수 있는 물건"이라며 더 이상 발전시키지 말 것을 지시했다는 게 사실일까. 디지털 문명의 미래를 읽어내고도, 과거의 영광에 젖고 당장 이익에 가려 필름 산업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안일함과 업계 최강자로서 시장의 흐름까지도 맘대로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함까지 더해진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당시 경쟁 관계였던 일본 카메라 업체들은 보급형 디카를 대량 출시하며 필름 없는 카메라 시대의 문을 열어 젖혔다. 급속히 도래한 디지털 시대가 제공한 무한한 기회의 열매는 결국 이들 업체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만년 2위에 머물던 후지필름은 주력 산업을 축소하고 대신 생명산업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살아남았고, 지금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실 변화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늘 화두다. 죽지 않은 다음에야 모르겠지만, 살아 있으려면 주변의 흐름을 늘 주시하며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종(種)은 가장 강한 종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종도 아니다. 종국에 살아남는 것은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하는 종이다'라고 했던 찰스 다윈의 말은 더욱 곱씹어볼 만하다.

그렇다면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변화에 아랑곳없는 고집이나 아집 대신 주변의 흐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겸손함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좋은 인생을 살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미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jhyu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