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국민안전처 해체, 이유 있지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국토안보부를 신설하였다. 이 새로운 조직에 22개의 정부기관들을 통합시켰다. 그것은 흩어져 있는 재난 관련 집행 부서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면 재난 대응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이는 냉전 이후 정부 조직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변경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대표 조직으로 평가받던 국토안보부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에서 혼란과 무능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2541명이 사망·실종했으며, 약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08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 후보와 민주당은 '재난 대응에 실패한 부시 행정부'를 꼬집으며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상징이었던 국토안보부를 해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걸려도 누적된 교훈을 발굴하면서 문제가 된 재난 대응 체계를 점검하였다. 효과적인 재난 대응을 위해 국토안보부 산하 조직인 재난연방청에 독립적인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의 무능한 국토안보부
오바마 때 폐기 않고 외려 강화

세월호 이후 신설된 국민안전처
비대한 조직, 법적 근거도 약해

재난 대응 취약성 계속 드러내
하지만 해체만이 능사일 순 없다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에도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2012년 허리케인 아이작 및 샌디, 2016년 루이지애나 주의 홍수 및 캘리포니아 주 대형 산불 등에서 재난 실패 원인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재난과 관련된 학습을 폐기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했다. 그 결과로 국토안보부와 재난연방청 등은 신속한 재난 대응 체계를 점진적으로 보완하였다. 이러한 노력들로 초기 대응을 위한 재난연방청의 통제권 강화, 재난 사전경고 강화, 비상사태 선포 절차 간소화 등이 제도로 정착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 사고 때보다 안정적인 재난 대응을 주도하였고, 주민 대피도 민첩하게 도울 수 있었다. 여론은 오바마 행정부의 어쩔 수 없는 재난 대응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동시에 긍정적 의미의 '학습효과' 또는 '교훈'이라는 우호적인 평가도 함께 내렸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에 신설된 국민안전처가 해체된다고 한다. 다시 이전의 행정안전부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만든 대표 조직이며, 지금까지의 재난 사고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해체 이유다. 국민안전처 신설은 총체적 재난 대응의 실패로 인한 학습의 결과물이었다. 당시에는 분산되어 있던 재난 대응 체계를 통합하고, 초기 대응에서 혼란을 막기 위한 존재의 당위성이 인정되어 많은 공감을 얻기도 하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장 중심의 초기 대응 주체인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 등이 국민안전처로 흡수되면서 그 조직들이 보유한 경험 학습들이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였다. 또한 조직이 비대해진 국민안전처가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현장 대응 조직은 흡수했지만 국민안전처 중심으로 초기 대응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해당 부처의 대응 절차나 방식에서 문제점을 발견해도 그러한 권한을 조정할 수도 없었다. 총체적인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신설된 것이다. 이렇듯 재난 대응 실패 원인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성급한 학습의 결과는 참담했다. 대형 산불, 조류독감, 신종플루, 산업재해, 메르스, 유해화학 사고, 지진, 구제역 등에서 재난 대응 체계의 취약성이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국내에서 발생한 여러 재난 사고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치 진영 논리로 학습을 무리하게 또는 성급하게 하려는 학습 방식을 정치학습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치학습은 집권 여당과 정부 등에게 불리한 실패 이슈들을 빠르게 차단하기 위해 무언가를 빨리 하려는 학습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정치학습의 결과가 국민안전처의 신설로 이어졌던 것이었다. 정치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조직이나 개인들이 직무를 이해하는 학습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재난 실패와 관련된 따가운 시선을 대통령에게 돌리게 하면서, 재난 담당 조직에 지속적으로 학습할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반대 논리에 따른, 또 다른 정치학습으로 국민안전처를 해체하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