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각 다른 삶] '노르웨이 아줌마' 이든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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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봉사왕'은 말했다 "이웃의 행복이 내 행복"이라고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구 우3동 주민센터에서 개최한 플리마켓 '이웃마켓'에 참가한 이든 마리아 포르데((가운데) 씨가 그의 남편 르나 포르데(왼쪽), 그의 쌍둥이 딸 마리타(오른쪽)와 함께 팬케이크를 굽다가 사진 촬영에 임했다. 다른 한 명의 딸 헤다는 늦게 도착해 사진은 함께 찍지 못했다. 이날 판매 금액 41만 8000원도 전액 기부했다. 이재찬 기자 chan@

평범한 전업주부인 '노르웨이 아줌마' 이든 마리아 포르데(Idunn maria forde·52) 씨를 만난 뒤 처음 든 생각은 그녀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의 방식에, 혹은 우리 아이의 교육 방법에 적잖은 변화와 용기 있는 선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든의 삶을 온전히 따라 할 순 없겠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 르나 포르데(52·엔지니어) 씨가 꾼 꿈이 그들 가족의 삶을 눈부시게 만들고, 가슴 뛰게 한 것처럼 또 다른 이들에겐 자극과 희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라이프 지면을 통째로 빌렸다.

6년 한국 생활 마무리하고 귀국길

요리·뜨개질 등 일상서 재능 기부
막연한 미래보다 현재 순간에 충실
4년간 요트로 일가족 세계 여행도

2017년 행복지수 1위 노르웨이
한국보다 '경쟁' 사회적 압력 적어

두 딸, 고교 졸업 후 1년간 '휴식'
빨리 가는 것보다 방향이 더 중요

2010년 1월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이든 씨 가족은 옥포와 울산에서 2년, 잠시 노르웨이로 귀국했다가 다시 내리 4년을 부산에서 살다가 오는 25일 완전 귀국길에 오른다. 쌍둥이 두 딸 마리타와 헤다는 지난달 26일 부산국제외국인학교(BIFS)를 졸업했다. '다른 생각, 다른 삶'의 주인공 이든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공유한다.

■ 남을 돕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다

이든은 최근 해운대구청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귀국을 앞둔 그녀의 봉사 이야기가 구청까지 알려진 덕분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옛 해운대역 인근에 자리 잡은 '해운대 환경포유 무료 급식소'를 찾는다. 4년 전 시작해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2년 전 노르웨이에서 부모님이 오셨을 땐 3번이나 봉사를 함께 했다. 이든이 들어 있는 '부산국제여성회(BIWA)'에서도 한 달에 한 번 급식소 봉사를 하는데 그녀만큼 열성적인 사람도 드물다고 귀띔했다.

이든의 기부금 모금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3년 전 다른 나라 친구 8명을 집으로 초대해 '노르웨이 요리'를 선보였다. 이후 각자의 집을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나라 요리를 만드는 '펀 쿠킹 클래스'를 연다. 이때 집주인은 식재료를 부담하고, 참가자는 1만 원씩 회비를 내는데 그것도 모아서 급식소에 기부했다.

8명으로 시작한 회원은 이란, 베네수엘라, 필리핀, 멕시코, 덴마크, 일본, 미국 사람 등 15명이 되었다.

그녀는 '희락원' 같은 아동양육시설에도 정기적으로 봉사를 나간다. 이래저래 모은 기부금도 전달하지만 자신이 잘 만드는 팬케이크나 와플을 수백 장씩 구워서 가져갈 때도 있고, 정이 그리운 아이들과는 직접 놀아 준다. 이든은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친구가 색소폰을 불고, 남편이 기타 연주를 하는 등 아마추어 공연이었지만 참석자들이 전해준 '봉투'를 모아 전액 기부했다.

일 년 내내 그녀의 손을 떠나지 않는 뜨개질 나눔도 있다. 1주일이 꼬박 걸려야 양모 슬리퍼 한 켤레를 완성하는데 BIWA 오찬 때나 플리마켓에서 켤레당 1만 5000원에 팔아서 전액 기부했다. 지난달 27일 해운대구 우3동 주민센터에서 개최한 플리마켓 '이웃마켓' 때도 800장의 팬케이크를 구워서 팔거나 양모 슬리퍼를 판매해 41만 8000원을 기부했다.

그녀의 생활에서도 알 수 있듯, 나눔과 봉사는 돈이 많아서도 아니며, 온전한 마음이었고, 배려였고,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나중에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든 마리아 포르데 씨 가족이 4년간 타고 여행한 요트 '푸른 청새치'호. 사진은 2008년 태국 푸켓의 '제임스본드섬(코타푸)'에서 정박 중인 모습. 이든 제공
이든은 쌍둥이 두 딸이 여섯 살부터 열 살이 될 때까지 4년간 요트를 타고 전 세계 가족 여행을 했다. 새로운 도전이자 용기가 필요했다. 하던 일도 관뒀다. 혹자는 '부자라서 요트 타고 세계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출발해 아프리카를 거쳐 카리브해로 가서 베네수엘라, 파나마를 거쳐 갈라파고스, 피지, 통가, 바누아투 등 남태평양에서 2년을 보냈다. 두 아이는 학교도 가지 않았고, 배에서 홈스쿨링을 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엄마와 기계공학을 배운 아빠가 선생님이었다.

그들이 꿈꾸던 가족 요트 여행을 실행하는 데는 결혼 후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두 사람은 그룹 미팅에서 처음 만났다. 이든은 '요트를 타고 가족과 함께 세계 여행을 하는 게 꿈'이라는 남자에게 반했고, 포디는 그 나이에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갖춘, 바다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반했다. 쌍둥이 임신 사실을 안 남편의 첫마디도 "와, 실용적이다. 나중에 세일링할 때 둘이 함께 홈스쿨링 시키면 되겠다"였단다.

요트 가족 여행을 위해 이들 부부는 옷도 꼭 필요한 것만 샀고, 가재도구도 새것보다는 중고로 된 것을 쓰는 등 근검절약을 생활화했다. 그렇게 9년 만에 요트를 장만할 수 있었고 그 이듬해 비로소 두 사람은 초저예산 요트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심지어 배에선 샤워도 1주일에 한 번밖에 못 했다. 사이클론이라도 만나서 육지로 대피해야 했을 땐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현지 학교 청강생으로 보내기도 했다. 고정적인 수입은 전에 살던 집에서 나오는 월세가 유일했다. 그때 이든의 나이 마흔을 지나고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갈 즈음, 배 안에서 마흔 살 생일파티를 했다.

"사람들은 자꾸만 꿈을 미루려는 경향이 있어요. 은퇴 후에 시간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강이 문제 될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릴 때 여행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아이들도 즐길 수 있잖아요. 아이들과 함게 여행을 하니까 좋은 점도 있어요. 어떤 섬에선 우리 가족을 위해 돼지도 잡고 환영 공연도 해 주어서 아이들 덕도 많이 봤어요."

■도전의 대가는 '심플 라이프'
이든 마리아 포르데 씨 가족이 요트로 전 세계를 여행하던 중 찍은 추억의 사진들. 마리타와 헤다가 여섯 살 때, 여행을 시작하고 카리브해의 세인트빈센트 베퀴아섬에서 처음으로 맞은 2005년 크리스마스 기념 가족사진. 이든 제공
여행 후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이든은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에선 이렇게 하는데 너희는 틀렸어'가 아니라 그들이 사는 방식과 우리가 사는 방식의 다름을 완벽하게 인정하게 되더란다.

또한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고 이든은 덧붙였다.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도 많이 봤다. 돈이 없으니까 물도, 전기도, 에너지도 아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에너지나 자원을 낭비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과시하지 않는 삶이 습관처럼 몸에 뱄다. 이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고, 가족 모두가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도 저절로 높아졌다.

또다시 여행을 할 것인가도 궁금했다. 이든은 남편 포디가 자주 하는 말이라면서 "할까 말까가 아니라 우리 다음엔 언제 할까?"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멋진 인생'이라고 이든 부부는 생각한단다.

사실 요트에서 생활한다고 하면 날마다 축제 같은 '샴페인 데이'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좁은 배에서 4명의 가족이 생활하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것이 많다. 날씨 챙기기는 기본이고, 배도 늘 손봐야 하는 등 일의 연속이다. 다만, 그로 인해 '자유'와 '심플 라이프'라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를 누릴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지난달 26일 부산국제외국인학교(BIFS)를 졸업한 쌍둥이 딸과 이든 씨 부부.
이든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리타와 헤다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졸업식을 앞두고 대학입학자격시험도 막 통과했기에 전날엔 새벽 2시까지 무려 6시간을 해운대 백사장에서 친구들과 비치발리볼을 했다고 말했다. 두 딸은 평소에도 아침 학교 가기 전 매일 30분씩 동백섬 달리기를 하거나 학교를 다녀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광안리까지 돌아오곤 한다.

노르웨이로 돌아가면 대학에 진학할 텐데 무엇을 전공하고 싶으냐고 물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갭이어(gap year·흔히 고교 졸업 후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시간)'를 갖기로 했단다.

이든은 "졸업하고 1년 정도는 몸과 마음을 연마하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마리타와 헤다는 노르웨이로 돌아가더라도 대학 진학을 1년 유예하고 '아웃도어 액티버티 스쿨'에서 1년을 보내게 된다. 정규 학교는 아니지만 등산과 세일링, 스킨스쿠버, 눈썰매, 캠핑 등 각종 야외 활동을 경험할 예정이다. 이든은 "노르웨이엔 '갭이어'를 보낼 수 있는 학교가 전국적으로도 30여 개에 이른다"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멀리 가더라도 갭이어를 거치게 되면 기숙사 생활을 하든 자취를 하든 혼자서 자율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리타와 헤다는 비교적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해 보였는 데도 갭이어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취업 공부 등을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것과는 달랐다.

■어린 시절 경험이 평생 간다 
대서양 부근을 지날 때 직접 요트를 조종하던 모습의 이든 씨.
장래 꿈 이야기로 넘어갔다. 헤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어요. 어릴 때 엄마 아빠를 따라서 2년간 남태평양에서 보낸 시간이 제겐 너무나 소중해요. 그곳으로 다시 가서 지역학, 해양학도 공부하고 싶고, 그들의 삶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탐구하고 싶어요."

마리타는 여러 가지 꿈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환경 지향적인 건축가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 지향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물었다. "환경을 고려한, 환경을 배려한, 환경에 어울리는 건물을 만들고 싶어요. 나중에 헤다에겐 친환경적인 집도 지어주고 싶어요. 사진작가의 꿈도 있어요.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세일링, 환경, 공해문제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비록 외국인학교였지만 한국에서 고교생 두 아이를 키운 만큼 노르웨이 엄마 이든이 보는 한국 교육 현실은 어떨까 궁금했다. 혹시, 두 나라 사이에 보이는 차이점은 없는지 물었다. 
마흔 번째 생일에 푸른 청새치를 잡고 기뻐하던 남편 르나 포르데 씨.
"노르웨이 부모들은 대체로 '릴랙스(relax·느긋하다)'한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까를 생각하죠. 방과후학교나 학원도 노르웨이엔 없지만 학교 커리큘럼에서도 악기 연주나 운동 비중이 큰 점이 한국과는 달라요. 아이들은 좀 더 창의적이고 활동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점도 그렇고요. 그에 비해 한국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와서도 다시 학원 가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그리고 나서 한 마디 덧붙이길, 얼마 전 마리타와 헤다가 노르웨이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과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홀가분한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심은 한국인이나 노르웨이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노르웨이인 눈에 비친 한국

그녀 눈에 비친 부산, 한국 사람은 어땠을까?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에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서 정말 좋았단다. "집만 나서면 산에도 쉽게 갈 수 있고, 자전거 도로도 잘 닦여 있어서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기에도 좋잖아요. 자연환경에 대한 접근성과 야외 활동 인프라는 큰 장점일 겁니다."

이든은 아침이면 늘 해운대 장산에 올랐다. 또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광안리로, 기장으로 다녔다. 다른 노르웨이 친구들과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종주도 했다. 연화리 기장 해녀촌엔 자주 가는 단골집도 있다. 이든은 지금 그곳의 한 '해녀 할머니'에게 선물로 줄 나무 거울도 손수 만드는 중이다. 사각 거울 주변에 나무를 덧대고, 그곳에 해운대 모래를 가져와서 알알이 붙였으며. 그것이 마르기를 기다려 해녀 할머니 집에서 사 와서 먹은 소라랑 전복 껍데기를 씻어서 말려둔 것을 장식처럼 붙일 참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외모 이야기로 넘어갔다. "개인적으론 내적인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싶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한국에 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외형, 외모에 관심이 좀 남다른 것 같았다"고 조심스레 언급했다.

한편으론 한국은 고속도로나 다리 같은 사회간접자본 인프라가 노르웨이보다 훨씬 잘 돼 있는 것 같아서 '우리나라(노르웨이)엔 왜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사회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의 문제일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했다가 유치 의사를 철회한 노르웨이의 경우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와 재정 문제에 부딪힌 결과였다. 또한 도로 인프라를 늘리기보다 그 예산을 노인복지 같은 곳에 먼저 투입하자는 의견이 높았다.

한국과 달리 노르웨이는 연금 제도가 잘 돼 있어서 노후 걱정을 한국만큼은 덜 해도 되고, 그를 위해 국민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등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덕분일 것이라고 했다. 한국만 해도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더 나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돈도 더 벌고, 성공해야 한다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 생각이 쏠리다 보니 지나친 경쟁 구도도 불가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녀 이야기를 서서히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올 초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 이야기를 꺼냈다. 2017년 1위에 노르웨이가 올랐던 게 생각났다. 전년도 조사에서 4위를 차지했던 노르웨이는 배려, 자유, 관용, 건강 등 사회적인 행복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1위에 올랐다. 행복을 수치로 표시하고 순위를 매긴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것이 행복을 끌어올리는 물리적인 수치라고 본다면 무시할 수도 없다. 잘사는 나라, 투명한 정부, 관용이 넘치는 나라, 평균 수명이 긴 나라 등은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든 개인적으로는 '잘해야지, 예뻐야지, 완벽해야지, 최고가 되어야 해…' 등등 노르웨이에선 사회적 압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을 지적했다. 다음으로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야외 활동을 많이 즐기는 편인데 거기서 오는 에너지도 큰 편이라고 밝혔다. 자기만 해도 거의 매일 장산을 오르는데 거기만 가도 행복하고 더 원하는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산을 오가는 동안 5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웃으면 미소가 되돌아오는데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4년 전 무료 급식소에 봉사를 나가서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아이 콘택트'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해서 고민했던 이야기도 털어놨다. "그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닌데 머리 숙이는 게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과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다 '티슈 박스(휴지곽)'를 들고 가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넸는데 그제야 눈을 들고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거예요. 그때부터 제 별명이 '티슈 레이디'가 되었지만요."

지금 그녀의 집에는 급식소를 찾은 이들과 껴안거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곱게 인화돼 있다. 귀국 전 마지막으로 봉사를 가게 되면 그들에게 선물로 전달할 사진이라고 했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오는 13일 마지막 '펀 쿠킹 클래스'를 자신의 집에서 열고, 단팥빵 800개를 만들어서 무료 급식소에 가져갈 예정이다. 잠시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사랑을 배웠다. 일상의 행복과 겸손 또한 엿보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일상이 행복할 수 있다는 작은 결론도 얻었다. 다가오는 급식소 봉사 땐 작별 인사라도 나눌 겸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늘 아래 눈부시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녀의 삶은 따뜻했고 멋졌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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