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도 행복한 부산]3. 그들이 원하는 노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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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질 높고, 선택 폭 넓은 '동네 사랑방'으로

부산 동구노인종합복지관 3층 경로식당 내 효자손 레스토랑 작업장. 동구노인종합복지관이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사업 중 효자손 쿠키·베이커리 생산팀이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오전 11시 30분 부산 동구 수정동 동구노인종합복지관 3층 경로식당. 점심 식사가 시작된 식당엔 여느 노인복지관과는 달리 배식을 기다리는 긴 줄이 없다.

노인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고, 빨간 앞치마를 두른 또 다른 노인들이 쟁반에 담긴 식사를 차례로 대접하고 있다. '빨간 앞치마 할머니'들은 동구노인종합복지관 자원봉사 동아리 '효자손' 회원들이다.

부산지역 복지관 24곳 운영 중
교육·여가·취업지원·돌봄 역할

인문학 강좌·초보 당구교실 등
다양한 수요 귀 기울여 반영해야
市 주도하는 컨트롤타워 '절실'

더 많은 노년층에 이용 문턱 낮추고
50+세대와 노인 '연결 고리' 돼야


효자손 회원 남삼순(81·여·동구 수정4동) 씨는 "오늘은 내가 배식 당번"이라며 "집에 그냥 있으면 답답할 텐데, 이렇게 나와서 작은 도움이라도 되니 보람이 있다"고 했다.

동구노인종합복지관 김채영 관장은 "한 끼 식사라도 공손하게 대접하기 위해 자리로 식사를 갖다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배식 봉사도 노인들이 하니 '대접 받는 사람도, 대접하는 사람도' 소소한 기쁨을 얻는 자리인 셈이다.

식당 내 효자손 레스토랑의 쿠키 작업장에선 앙금빵 만들기가 한창이다. 배근순(66·여) 씨는 "2015년 11월부터 이 일을 했는 데 여기가 평생 첫 직장"이라며 "버는 돈은 얼마 안 돼도 사회 참여한다는 게 기쁘고, 나와서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삶에 큰 활력이 된다"고 했다. 그는 "자식들한테 일한다는 말을 안 해서 애들은 내가 늘 어딘가 놀러 다니는 줄 안다"고 귀띔했다.

3개월 동안 제빵 교육을 받고 투입된 손맛 장인들은 이젠 남부럽지 않은 제빵사가 돼 '효자손 쿠키·베이커리'를 능수능란하게 만들어 내는 중이다.

■노인복지관 서로 돕고, 일하고, 배우는 곳

사무실, 상담실(1층)과 배움터실, 정보화교실, 장기바둑실, 쉼터(2층), 경로식당, 쿠키 작업장, 물리치료실(3층), 주간보호실(4층), 대강당(5층). 야외엔 자활근로작업장과 게이트볼장, 쌈지공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동구노인복지관 층별 안내판을 보면 복지관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다.

노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취미여가 건강운동 강좌를 열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노인일자리사업과 사회참여사업, 복리후생사업 등을 지원하는 곳. 동구노인복지관 이용자는 하루 평균 400~500명에 달한다. 이 중 경로식당 이용객이 250~300명가량 된다.

동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동구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20.6%나 돼 부산지역 16개 구·군 중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다. 그다음이 중구(19.6%), 영도구·서구(각 19.4%) 순이다.

동구는 역사·문화콘텐츠를 결합한 '초량 이바구길'로 다양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해낸 지역이기도 하다. 동구노인복지관은 관내 노인일자리 1500개 중 600개 일자리 지원을 수행 중이다. 김 관장은 "노인 복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노인의 사회적 역할을 찾아주고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복지관,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부산지역 노인복지관은 각 구·군에 19개, 복지관 분관 5개 총 24개가 운영되고 있다. 복지관별로 운영 프로그램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복지관이 수행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 평생교육과 취미여가 지원부터 복리후생, 노인돌봄종합서비스까지. 너무 많은 일을, 너무 비슷하게, 벅차게 수행 중이다.

그러나 노인복지관의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 복지관 시설이 부족한 게 아니라 있는 복지관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복지관 프로그램 중 인기 강좌는 넘쳐나는 노인 수강생으로 늘 자리가 없고, 몇 년째 같은 강사가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야 할 이유다.

부산복지개발원은 지난해 부산시가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 고령친화도시 정책모니터링을 위해 부산지역 구별 노인복지관과 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 지회 대표자 64명으로 분과별 부산 슈퍼 시니어 정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부산시가 관련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아 의견 수렴을 위한 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동구노인종합복지관 민요장구교실. 이재찬 기자
슈퍼 시니어 정책위원회 회원인 김광식(72·여·수영구 거주) 씨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싶었는데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복지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노인들의 여가문화가 보다 다양해지려면 인문학 강좌나 초보 당구교실 등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노인복지관에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연구 조사 역할을 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국·시비와 일부 구비 지원으로 운영되는 노인복지관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노인복지 전문가는 "복지관이 의미 없는 지역 구분을 하기 때문에 남구 문현동 일대 노인들은 가까운 동구 자성대복지관을 두고 멀리 남구복지관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졸업 없는 복지관, 선순환 구조 필요

김 관장은 "노인복지관은 노인만 오는 곳이 아니라 세대 간 교류가 이루어지는 마을 사랑방이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복지관 이용자는 졸업이 없는 것도 문제다. 노인 문제는 노인이 되기 전 학습과 훈련으로 준비하고 예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복지관이 새로운 사람을 맞아야 하지만 늘 오는 노인들만 계속 오니, 순환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지금의 노인 세대와는 너무 다른 50+(만 50~64세)세대를 위한 에이징 로드맵이 있어야 하는 데 선순환되지 않는 구조가 큰 문제"라며 "곧 노인층 진입이 시작되는 50+세대와 기존 노인세대의 연결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자 큰 딜레마"라고 말했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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