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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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신문들이, 언론이, 있는 사실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보도하리라 믿는 사람이 많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실례를 보자.

①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②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님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①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린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연설했다. 한데, 몇몇 신문은 ②처럼 '님…'으로 표기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을 바꾼 것. 하지만 한글맞춤법에 따르자면 '임'이 옳다. '님'은 사람의 성이나 이름 뒤에 쓰이는 의존명사여서 문장 첫머리에 올 수 없다.

물론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저렇게 '님'으로 쓴 근거는 있다. 작품 이름을 하나의 고유명사로 본 것이다. 고유명사는 불러 달라는 대로 부르는 게 원칙이다. 아래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온라인가나다'난에 실린 2015년 5월 21일 자 답변.

'…'님의 침묵'처럼 작품명의 경우에도 '임'이 아닌 '님'과 같이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 특수성을 인정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답변대로,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여기저기 '님의 침묵'으로 올라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정해 버리기에는 찜찜한 게 몇 가지 있다. 먼저, 작품명이라서 굳이 '님'이라 썼다면, 대통령의 연설 또한 하나의 작품인데 왜 손을 댔느냐는 물음에는 답이 궁해진다. 부르는 대로 써야 한다면, 말하는 대로 써야 하는 것도 원칙이 돼야 할 터.

또 국립국어원이 작품명에 대해서는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효석이 1936년 발표한 단편 소설 '모밀꽃 필 무렵'을 '메밀꽃 필 무렵'이라고 바꿔 실은 것이다.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江>(1977년)도 '머나먼 송바강'으로 실려 있다. 고유명사임에도 손을 댄 것이다.

작품명에 손을 댄 데 대해 변명을 해 주자면 이렇다. 사람 이름은 바뀔 여지가 적은 '단단한 고유명사'이지만 작품명은 바뀔 가능성이 있는, 좀 '느슨한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라고. 고유명사라도 결이 다른 것이다. 문 대통령의 연설뿐만 아니라 국가보훈처의 공문에도 '임'으로 쓰이고, 5·18을 배경으로 촬영 중인 영화 제목이 '임…'인 것도 그 때문일 터. 언론의 관련 기사에서 '임'이 '님'을 압도적으로 누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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