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 푸드 콘서트에서 만난 4人 4色 성공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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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성공 방정식, '미래 대한 고민·열정·노력'이 해법

왼쪽부터 나상태 ㈜외식1번가 대표, 서정희 경남정보대 호텔외식조리학과 전임교수, 이현기 모모스커피 대표, 이원일 셰프.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한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6회 식품안전의 날 기념식 및 제3회 청년창업 푸드 콘서트'에 연사로 초청된 ㈜외식1번가 대표 나상태 회장을 비롯, 대한민국 요리명장 서정희 경남정보대 호텔외식조리학과 전임교수, 모모스커피 이현기 대표, 이원일 스타 셰프의 삶도 마찬가지다. 때론, 거듭된 시련과 실패를 이겨 내야 했고, 현재에 발을 딛고 있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미래를 고민했으며,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노력에서 성공이란 결실이 얻어진 것이었음을. 오늘 라이프 지면은 그들이 '성공'을 얻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창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외식1번가'가 밝힌 15가지 경쟁력

나상태 ㈜외식1번가 대표
"남들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40년간 홀 서빙 경력, 성공 밑거름
"관련 직종에 먼저 취업해 스펙 쌓고
하나만 잘해도 꿈 이룰 수 있다" 조언

성공한 외식 사업가 나상태 ㈜외식1번가 회장은 요리사는 아니지만 식당 홀 서빙만 40여 년을 한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뒤 '외식1번가'를 창업한 지 올해로 10년째라고 밝혔다.

나 회장은 청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단은 관련 직종에 취업을 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그다음에 스펙을 쌓아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대학에서 배우는 호텔 요리만으로는 일반 창업이 어렵기 때문에 호텔 취업반뿐 아니라 일반 창업반을 꾸려 달라고 대학 측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마산대 식품과학부 호텔외식조리전공 특강에 가서 그는 "'마산의 명물 아귀찜을 만들 줄 아느냐?'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모른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고 소개하면서 "마산 아귀찜 하나만 잘 만들어도 창업이 가능한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창업하기 가장 쉽다는 돼지국밥 가게만 해도, 30평짜리 점포에 창업비용 6000만~7000만 원이 드는데 이는 사업계획서를 잘 꾸미고, 임대계약서만 챙겨 가도 청년 창업비용 1억 원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조리학과 학생 치고 돼지국밥 하나 제대로 만들 줄 아는 학생이 몇이냐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나 회장은 창업 자금이 적게 들고, 부모나 누군가 도와줄 사람만 있다면, 최소 3명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음식점으로 값싸고, 서민적이면서, 실패해도 피해 규모가 크지 않은 20대 청년 창업 업종으로 국숫집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 회장은 10년 전 3명의 공동 투자자와 함께 부산 남구 용호동에서 250평짜리 '외식명가'를 창업해 10개월 만에 영업이익 10억 원을 건졌으며, 그 뒤 1년 만에 다시 25억 원을 들여 해운대점을 차려서 1년 만에 영업이익을 뽑았다고 밝혔다. 지금은 부산에 직영점 6개, 체인점 3개를 운영 중이다. 그가 밝힌 '외식1번가'의 경쟁력은 △음식 맛 △가격 △서비스 자세와 봉사 정신 △입지 조건 △인테리어 △주차장 △흡연실의 편안함 △어린이 놀이방 △화장실의 고급화 △직원 동선과 편리성 △직원 후생복지 △냉장 시설 △기물, 식기의 고급화 △디저트의 차별화 △인간적인 향수(아날로그 감성) 등 15가지로 이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성공은 힘들다고 말했다.

■명장의 성공 비결, 꿈꾸는 만큼 노력해라

서정희 경남정보대 호텔외식조리학과 전임교수
"계단 오르듯 차근차근 한 우물을 파라"

중국집 배달서 시작해 명장·교수 꿈 이뤄
성공 조건으로 꿈·노력·성실·자신감 제시
"사회 공헌·요리사들과 교류도 신경 써야"

대한민국 통틀어도 중식 부문 요리명장은 11명. 부산 사람으로선 유일하다는 서정희 교수의 성공한 인생은 8단계의 꿈에서 비롯됐다.

경남 하동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부산기계공고로 진학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2 때 시작한 중식당 아르바이트가 인연이 돼 뒷날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즉, 배달 중국집 '철가방'에서 시작해 오너 셰프가 됐고, 이후 대한민국 명장과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는 계단을 오르듯 한 단계 한 단계 착실하게 꿈을 성취했다고 고백했다.

첫 번째로 그가 세운 꿈은 창업, 두 번째는 자가 영업장을 갖는 것, 세 번째는 좀 더 큰 영업장, 네 번째는 국가공인 조리기능장(2005), 다섯 번째는 대한민국 요리명장(2012), 여섯 번째는 대통령 산업포상(2013), 일곱 번째는 교수, 여덟 번째는 박사학위 취득(2016) 등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성공이 아니었음을 그는 설명한 것이다.

서 교수는 "성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성실해야 한다"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자기 나름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요리사로 살아오는 긴 시간 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연 설명도 따랐다.

서 교수는 또 "한 우물을 파라!"고 주문했다. 사실, 중식 부문 조리기능장이 된 것도 그의 나이 마흔이 가까워서였고, 1985년 요리사 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따지면 20년 만이다.

이후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았고 중국요리 서적을 발간했으며, 참마 튀김 제조법 등 몇 가지의 특허 요리를 만들었으며, 추석과 설 연휴 틈틈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요리 실력을 끊임없이 갈고닦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창업을 했다고 모든 걸 이룬 게 아닌 만큼 봉사활동 등 지역사회 공헌과 요리사들과의 교류에도 소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요리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선 자기만의 '깨달음', 긍정 마인드를 꼭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모스커피'의 지속 가능한 성장

이현기 모모스커피 대표
"지속 가능한 업종을 선택하라"

유행성·차별화·성공 가능성 등 두루 고려
커피 매장에서 무역·쇼핑몰까지 사업 확장
오래 남는 기업 되려 직원 복지에 투자

'모모스커피' 이현기 대표가 청년들과 나누고 싶었던 주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었다. 금정구 부곡동에서 4평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시작한 '모모스'는 이달로 만 10년을 맞았다. 9년 동안 하나의 매장만 운영하다 지난해 신세계 센텀시티 1층에 매장을 하나 더 내면서 2개가 되었고 직원은 40명이다.

그가 지속가능한 성장에 주목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2006년 이 사업을 준비할 당시 자료를 찾아보면 창업 시장의 폐업 주기가 3년이었습니다. 제 나이 서른이었는데, 3년마다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한다면 무려 10번 이상 사업에 성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서 끝까지 경쟁력을 쌓아 갈 수 있는 걸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커피였다. 업이 없어지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산업의 유행성), 시장이 성장한 뒤에도 이겨 낼 수 있을까(맛과 로스팅 기술 등 차별화 가능성), 내가 잘할 수 있을까(자신의 가능성)를 두루 살핀 결과였다. 이전에 부모님이 보신탕 가게를 운영했는데 17년 만에 폐업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운 것도 있다.

물론, 커피업도 만만하진 않다. 이 대표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 10년이었다"면서 "2007년 월 300만 원이던 매출은 2017년 연 60억 원을 예상할 정도로 커졌다"고 밝혔다.

2009년 처음으로 참가한 북미 카페 투어에서 '제3의 커피 물결', 스페셜티에 눈을 떴다. 항공권을 단번에 사지 못해 신용카드로 3개월 할부로 끊고 감행한 미국행이었다. 2010년 커피 교육과 도매 유통업을 시작했고, 2011년엔 더 좋은 재료를 쓰고자 무역으로 확장했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산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2012년 산지를 찾아가 직거래를 시작했다. 2013년엔 온라인 쇼핑몰도 열었다.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파트다. 이 수익은 직원 복지에 재투자한다.

이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외식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성공한 CEO는 나올 수 있지만 직원까지 괜찮은 직장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오래 남아야 오래된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직원 복지에 더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손님과 직원, 생산자 모두에게 이로운 걸 고민한 뒤 이것을 만족시키는 부문만 진행하고자 합니다. 지속가능한 기업의 핵심은 사람이니까요."

모모스엔 현재 4년 차 이상 바리스타만 15명에 이르는데 이것이 곧 모모스의 경쟁력이라고 할 정도다. 또한 3년이 된 직원에겐 1개월의 유급휴가(안식월)도 실시한다. 커피와 관련된 생산·소비국을 다녀오는 해외 연수도 2010년부터 시행 중이다. 모모스의 미래 비전은 로컬기업으로서의 성장에 두고 지금도 여러 가지를 모색 중이다.

■'스타 셰프' 이원일의 색깔 찾기

이원일 셰프
"자신만의 색깔, 정체성을 찾아라"

유학 시절 잘할 수 있는 한식에 눈떠
한식당서 여러 음식 배우며 색깔 찾아
동료·친구와 폭넓은 소통 '발전의 원동력'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원일 셰프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앞사람들이 다 해 버려서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식을 꽤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필리핀 어학연수를 갔다가 눌러앉는 바람에 경영학 전공도 물 건너가 버린다. 필리핀에선 컴퓨터공학과로 편입했다. 그런데 컴퓨터 전산 처리 오류로 하루 만에 인테리어 디자인학과로 바뀐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2년 반을 하고 1년 반만 더하면 졸업인데 너무 하기 싫어서 부모님 몰래 외식경영학과로 변경한다. 등록금은 직접 벌었다.

외식경영학과에선 외식도 공부하고 경영도 공부했다. 필리핀이다 보니 양식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 날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이탈리아 셰프를 만났다. 그는 할머니가 오븐에서 막 꺼낸 라자냐를 퍼내고 남은 가장자리를 긁어서 입으로 빨았을 때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더란다. 양식을 배우던 자신에겐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요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서 자신에게 전해진 한식에 눈을 뜨게 됐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필리핀에서 돌아와 한식당 설거지부터 사찰음식, 궁중음식, 전통주 등을 배우면서 한식의 프로파일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돌아, 돌아서 오게 됐는데 이 셰프는 뜻밖에도 "결국은 사람이 남더라"는 고백을 했다. 그들과의 협업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도 말했다.

"빵집 '디어브레드'가 정말 잘됐을 때 한 달 순수익이 4000만 원인 적도 있었어요. 직원들과 1 대 1 대 1…협동조합 방식으로 나눴어요. 업장이 늘어났고, 또 다른 분야 전문가가 들어와서 스시집을 여는 등 선순환이 시작됐어요. 제 색깔은 분명 한식이었는데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베이커리 하는 친구들까지 모여서 엄청난 팀을 이루다 보니 모든 요리를 아우르는 멀티 플레이어가 된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만의 색깔, 정체성입니다.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재미있게 살 순 없을 테니까요. 여러분도 꿈을 꿀 때, 나는 과연 어떤 아름다운 색깔을 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길 바랍니다."

이 셰프는 자신의 발표를 마친 뒤에도 1시간 가까이 질의응답 시간을 이어갔다. 그는 "요리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요리사가 박봉이라는 것도 잘 안다"면서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곳에서 내가 배울 게 있는가'를 잘 따져 보고, 더 배울 수 있고 더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옮겨라"고도 했다. 그는 또 "요리 기술을 익히려면 될 때까지 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내 손에서 죽어 나간 연어만 2000마리, 광어는 3000마리는 족히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공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그는 "성공의 기준이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돈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죽을 때까지 목표는 장례식에 3만 명이 오는 것이어서 성공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익살을 부렸다.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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