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이야기] 19. 라움의 '비꼴로'와 '모닝 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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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켜' 오롯이 담아낸 공생의 공간

비꼴로는 지역과 문화, 역사를 함께 연결시켜 '공생의 건축'이란 기지개를 켰다. 사진은 비꼴로 전경.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제공.

그곳에 가면 주위를 서성거리며 생각도 머뭇거려진다. 부산역 근처 초량 지역에 건축의 내공이 들어간 게스트 하우스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표준화된 호텔 객실에서의 기능적인 숙박이 아닌, 지역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편린들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 그 중심에 문화와 역사의 개입에 의한 '인간'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경사지·산지 층고 그대로 살려내
초량 지역 역사·삶의 편린 곳곳에
주민과의 소통 창구 역할 '비꼴로'
골목길을 향한 열린 시선 '모닝 듀'

라움건축사사무소 오신욱 소장의 '비꼴로'와 '모닝 듀(아침이슬)'를 비롯해 벌써 완공된 '다섯 그루 나무'가 동행하는 친구같이 관광객들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며 까치발을 하고 서 있다. 초량 상해문 인근이다. 동아대 건축학과 안재철 교수 역시 조만간 근처 폐가옥을 매입해 작업실 겸 대안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이런 행위들은 건축이 거대담론이 아닌, 작은 건축물이 하나둘씩 쌓이는 것이란 것을 다시금 일깨운다. 관계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플라스틱 꽃 같은 모조품적인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며 웃음꽃을 피우는 공생의 공간이다.

거의 10년째 방치돼 아무도 건축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16평가량의 일본식 적산가옥을 오 소장이 매입했다. 1, 2층은 갤러리 카페, 3, 4층은 생활형 숙박시설(게스트 하우스)로 인가받았다. 갤러리 겸 카페는 젊은 작가들의 그림과 수공예품을 전시 판매해 수익을 작가들에게 돌려주는 문화 중개방 역할을 한다. 바로 비꼴로(Vicolo·골목길·샛길)다. 비꼴로는 멀리서 관찰하면 화려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절제된 볼륨과 최소한의 다듬기를 통해 소박한 재료와 겉모습으로 나타난다. 골목 옆으로 열려 있는 테라스는 주민들과 손님의 소통 창구로서 지역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배려했다. 

비꼴로 내부 모습.
오 소장은 대략 땅값을 포함, 3억 5000만 원의 건축비를 들였다고 한다. 이 정도 액수면 단조로운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단독주택에 거주하면서 게스트하우스 운영으로 수익도 낼 수 있다. 오 소장은 적산 가옥 인근의 계단에 선뜻 반해 구입을 결정했다. 과거 차이나타운 사당으로 오르는 곳이었던 시멘트 계단을 걷어내 그 안에 통돌 화강석을 그대로 살려 계단을 조성했다. 오 소장은 "주민들이 계단을 즐겨 이용하면서 건축물을 짚고 오르는 모습에 흐뭇했다"며 "명품이 아니라, 지역의 참맛을 건축화시켜 초량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의 자취들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관광은 주민과 지역 역사는 '킬링'시킨다. 바람직한 도시민박 건축물인 모닝 듀 전경.
비꼴로에서 가까운 거리인 도시민박 '모닝 듀'는 싱가포르 남성과 한국 여성(박이슬 씨)이 국제결혼 해 거주공간 겸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다. 도시민박은 단독주택에 집주인이 거주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는 시설이다. 건축지인 '공간'과 싱가포르 언론에도 소개됐다.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렸다. 객실 발코니 역시 골목을 향해 시선이 열려 있다. 층고에 따라 객실들이 다양한 공간감을 연출, 특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오 소장은 "초량의 장소적 특성을 전달하는, 힘 있는 건축이 되기를 희망했다"며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들이 주로 지역성을 담아내는 공공 건축물들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모닝듀 내부 모습.
초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은 경사지에 조급하게 만들어진 구축물들이다. 이 구축물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거칠게 자리 잡고 있지만, 오묘하게 정리된 규칙이 있다. 주위는 차이나타운의 중국인과 러시아인을 비롯한 구소련 지역의 서양인들이 공존하는 이국적인 공간이다. 사회학자 호비마마가 언급한 '혼종성'에 오 소장은 또 하나의 켜를 얹어 놓아 부산성을 살려 놓았다. 오 소장은 곧잘 "산에 오르듯 건축을 오를 것이다"란 말을 한다. 경사지와 산지 층고라는 부산의 켜를 잘 읽어낼 수 있는 부산의 건축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말이다.

주민들은 두 건축물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며 그들 소유의 건축물도 이렇게 건축이 가능하냐고 물어본다. 마을재생이 수직적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위적으로 '현대'와 '욕망'을 이식하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경험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매개자로서의 건축의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건축의 분자 운동'들로 인해 초량의 내면은 매우 풍성해지고 있다. 박태성 문화전문기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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