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청년들, 토익 책 잠시 놓고 '청년 권리'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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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청년 기본 조례가 곧 제정될 예정이지만, 청년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부산 청년들이 청년 조례 공청회 하루 전에 모여 청년 조례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김현지 씨 제공

'만 20세부터 29세까지의 모든 청년은 종합검진에 준하는 무료 건강검진을 통해 청년의 건강권을 보장한다.' '시장은 청년의 합리적인 금융 생활을 위한 교육과 상담 등의 방안을 마련하여야 하며 채무 및 그 이자를 상환하기 어려운 청년을 위해 지원할 수 있다.' 얼핏 꿈 같은 이야기지만 전북 전주시의회 청년 비례대표 서난이 시의원이 전주시 조례를 직접 읽은 내용이다. 부산 청년들이 눈을 '반짝'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언제?' 청년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부산 '청년 조례' 공청회 앞두고
청년들 모여 사전 공부에 열중
기존 案 꼼꼼히 따져 불합리 지적
'의견서' 연대 서명, 부산시에 전달

전국 36개 지자체 '청년 조례' 제정
부산, 늦은 만큼 제대로 만들어야

부산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안 공청회를 하루 앞둔 4월 25일 저녁 7시 30분. 부산 금정구에 있는 부산콘텐츠 코리아랩-금정서브센터에 부산 청년 20여 명이 모였다. 부산시가 청년 기본 조례를 만든다는데, 그래서 공청회를 한다는데 정작 당사자인 청년은 조례가 뭔지도 모르겠고, 시험 기간이라 평일 오후 열리는 공청회도 갈 수 없는 처지라 긴급하게 모인 자리였다.

전북 전주시의회 서 시의원은 이날 '암 것도 모르는 부산 청년'들을 위해 '지역별 청년 기본조례 제정 사례'라는 내용을 발제했다. 도대체 조례가 뭔지 기초부터 배우는 자리였다.

"조례는 지방자치법입니다.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하지만 않으면 지방의회나 단체장, 주민 발의로 만들 수 있죠." 전주시는 지난해 5월 '전주시 청년희망도시 구축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전주시 청년들은 무료 종합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했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하면 구제를 받을 근거가 생겼다.

전주시의회 서난이 시의원이 각 지자체의 조례에 대해 발제를 하고 있다. 이재희 기자
그런데 미리 살펴본 '부산 청년 기본 조례안'은 청년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우선 서울 청년들이 직접 발의해서 만든 서울특별시 청년 기본 조례 제1조(목적)와는 다른 점이 분명하게 있었다. 서울시 청년 조례 제1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청년들의 능동적인 사회참여 기회를 보장하고'라고 했는데 부산 청년 기본 조례안 제1조(목적)엔 '부산광역시 청년이 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로 달랐다. '정치'가 빠진 것이다.

㈔청춘멘토 이예진 기획팀장은 "정치 참여는 헌법이 보장한 시민 천부의 권리인데 굳이 청년 조례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청년은 시민이자 기본권을 가진 국민이기에 조례안에서 이를 제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조례 공부' 다음날인 25일 부산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와 경제문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부산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 제정 관련 공청회'에서도 조례안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나왔다.

대안문화행동 '재미난 복수'의 대표인 김건우 부산시 청년문회위원회 위원장은 "부산시 조례안이 기존 '청년문화 육성 및 조례'를 폐지한 뒤 새 조례에 합친다는 것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기존 청년문화 조례는 부산만의 고유한 청년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생산자(문화인) 위주의 지원 조례인데 새로운 조례는 보편적 청년문화를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 그 대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청년 기본 조례안은 기존 '청년일자리 창출 지원 조례'도 포괄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청년 문화 창출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상한 형태의 조례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청년 정책을 고민하는 심오한연구소 엄창환 대표는 "일자리 정책에 국한하거나 단순한 청년(일자리)정책으로는 복잡다단한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청년 기본 조례의 정신"이라며 "부산시의 청년 조례안을 보면 기존 청년일자리 조례와 청년문화 조례를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느낌이다"며 비판했다.

공청회가 평일 오후에 열려 다양한 의견을 제출해야 할 청년들의 참석이 차단됐다는 불만도 나왔다. "청년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게 다음엔 시간 변경을 했으면 좋겠다"고 주최 측에 의견 제시를 했던 청춘멘토 이 기획팀장은 "전문가 시간을 맞춰야 해서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이 팀장은 시간이 촉박하다고 보여주기식으로 공청회를 해서는 안 된다며, 다소 늦어지더라도 서울처럼 청년들이 직접 참여하여 청년 기본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지자체의 청년 기본 조례는 11개 광역 지자체와 25개 기초지자체에서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부산은 늦깎이인 셈. 부산시 청년 기본 조례안을 공동 발의한 부산시의회 황보승희 시의원은 "입법예고 기간은 물론 시의원실이나 시청 관련 부서에 조례안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면 검토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 기본 조례안을 심의할 예정인 오는 19일 부산시의회 정기 의회 자리에서도 조례안은 수정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은 설명회를 마친 서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부산 청년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장면. 김현지 씨 제공
우선 지난 8일 부산 청년 54명이 연대 서명한 '부산시 청년 기본 조례안에 대한 의견서'가 부산시에 전해졌다.

청년 조례안 대표 발의자인 부산시의회 이상갑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도 청년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이른 시일 내에 면담 자리를 갖기로 했다. 이 위원장은 "부산 청년들을 위한 조례인 만큼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가면서 청년이 살 만한 부산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부산시의회는 17일 상임위 처리를 거쳐 이르면 19일 본회의에서 청년 조례안을 제정할 예정이다.

전주시 청년조례를 만든 서난이 시의원은 "일자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청년을 쓰고 버리는 건전지처럼 소모하는 정책"이라며 "청년들은 지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주시에 청년 조례가 만들어지자 '청년희망단'도 생겼다. 청년들의 자립을 위한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청년희망단은 청년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향후 청년단체로 정착할 계획이다.

심오한연구소 엄 대표는 "전주는 청년 관련뿐만 아니라 시의 위원회 178개 모두에 청년 위원 20%를 할당하겠다고 시장이 약속했다"며 "청년을 시의 각종 정책을 심의하는 위원회에 강제 할당함으로써 정책이 젊어지는 효과가 생길 것이어서 부럽다"고 말했다. 전주시의 청년 예산은 한 해 400억. 전주시 서 시의원은 "청년 예산이 전체의 0.9%까지는 확보되어야 한다"고 부산 청년들에게 살짝 팁을 줬다. 부산시 예산이 10조 시대이니 그렇다면 청년 예산은 한해 1000억 원 규모다.

청년문화위원회 김 위원장은 "기존 활동이 활발한 문화위원회나 일자리위원회를 규정하는 조례를 통폐합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심화, 전문화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고 또 같이 전체적이며 보편적 청년 문제의 해결책을 만드는 창구로서의 부산시 청년 기본 조례가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청년의 바람을 시의원들은 새겨 들어야 한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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