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기아차 노동조합을 보는 우려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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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헤이마켓 기념물. 노동절의 발상지이지만 차별을 극복하지 못한 미국 노동자들은 정작 노동절을 기념하지 못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 제공

노동절을 코앞에 둔 4월 28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에서 분리하는 결의를 하였다. 공교롭게도 그보다 2주 앞서 촛불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그 광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휴일인 노동절 당일에도 삼성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작업 도중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연히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결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새삼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노동절의 의미와 그 권리에서 배제된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절이 오늘날 공식 휴일이 된 것은 자본주의의 정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경제적 정당성 때문이었다. 봉건제는 단순한 신분과 혈통만으로 타인에 대한 경제적 약탈과 특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런 경제적 차별에 대항해 모두의 동등한 경제적 권리를 주장했다. 그것은 판매자(노동자)와 구매자(자본가) 두 당사자의 동등한 권리를 의미하고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감독하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국가기구까지 두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익도 역시 차별을 통해서만 나온다. 자본주의는 구매와 판매의 차액을 이익으로 실현하고 그것은 판매자의 권리를 구매자의 권리가 침해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스스로 차별 내세운 미국
노동자권리 가장 낮은 나라 꼽혀
차별철폐 위해 150년간 싸운 독일
난민 문제도 관용으로 풀어내

노동운동이 차별 극복 못하면
미국처럼 노동자 권리까지 몰락


노동절은 판매자가 침해된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싸워 얻은 성과이고 구매자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투쟁이 자본주의 자신의 정당성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환 당사자들의 동등한 권리가 그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 문제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노동력의 구매자가 판매자들을 차별하여 이익을 얻는 수단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답도 자본주의의 정당성 속에 숨겨져 있다. 차별에 대항하는 동등한 권리가 그것이며 '일반구속조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어려움은 차별이 판매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면서 차별의 이익이 판매자 일부에게도 돌아간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이들 일부가 동등한 권리를 반대하는 일이 나타난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결의는 그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판매자가 스스로 차별을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역사는 두 개의 상반된 사례를 교훈으로 알려준다. 미국과 독일이다. 미국은 이주식민지의 특수성 때문에 처음부터 노동운동이 차별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먼저 이주한 사람이 나중에 이주한 사람보다 우대를 받는 선임권이라는 것이다. 백인 남성 숙련노동자 외에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것이 AFL이다. 가입이 거부된 사람들은 CIO라는 별도의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 노동운동은 사회적 소수파로 밀려났고 미국은 오늘날 노동자들의 권리가 가장 낮은 나라로 유명하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동자 권리를 자랑하는 독일은 처음부터 차별 없는 노동운동을 내세웠다. 조합원도 아닌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독일 노조들로부터 폭넓은 보호와 지원을 받은 사례는 유명하다. 난민 문제에 대해 독일이 보수정당까지도 관용의 원칙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노동운동이 사회 전체에서 차별 철폐를 위해 150년 이상 싸워 온 덕분이다. 그래서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노동운동이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면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권리는 함께 몰락한다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결의는 촛불이 힘들게 열어 놓은 우리 사회의 미래와 반대의 길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우려스럽기도 하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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