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희망의 바다를 만들자
/강병균 해양문화연구소 소장 겸 ㈔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유라시아 대륙의 동북쪽 한반도에 위치한 우리나라. 예부터 지리적으로 대륙국가였다. 현재는 지정학적으로 섬나라와 다를 바 없다. 북쪽은 60년 넘도록 휴전선에 가로막혀 있고 나머지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삼면이 바다로 열려 있는 해양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해양은 암울하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은 수출입국 또는 무역대국을 외치면서도 우리나라를 결코 해양국가로 보지 않는다. 한국 수출입 물동량의 99%가 바다를 통해 운송되는데도 정치권과 중앙정부 인사들은 서울이나 내륙 중심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덩달아 우리 국민들의 해양 인식 역시 매우 낮다. 바다를 활용한 한국 조선산업과 해운·항만산업, 수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국가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으나 정작 대다수 국민은 해양·수산업의 중요성을 모른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해양국가
정부와 국민 해양 인식은 낮아
해양강국 건설로 돌파구 찾아야
바다는 땅, 바다에 희망을 심자
일상생활마저 바다와 거리가 멀다. 국민들의 해양에 대한 친밀감과 관심이 거의 없다. 경기침체 탓에 팍팍한 삶에 얽매이다 보니 바다를 찾아서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바다는 일반인들 뇌리에 소중한 목숨을 앗아가는 공포스러운 존재, 기피대상으로 각인돼 왔다. 선진국에서 발달한 해양레저, 해양관광 문화의 경우 우리는 걸음마 단계이고 규제도 수두룩하다. 많은 국민은 아직도 해양·수산 분야 종사자를 가난한 사람쯤으로 치부하거나 '갯가 사람'이란 말로 천대한다.
정부가 지난 2월 중순 세계 7위의 국내 최대 선사였던 한진해운을 일개 부실기업으로 간주해 청산으로 내몬 것은 해양에 대한 인식 부재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다. 40년 동안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눈에 보이지 않는 국제해운 경쟁력과 국가 기간산업과 다름없는 해운산업의 가치를 간과했다. 한진해운의 해상운송망 의존도가 높은 부산항과 수출입 화주들이 겪게 될 어려움과 연쇄피해 등 후폭풍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주요 식량자원의 하나인 수산양식물 생산을 담당하는 수산업도 힘겹다. 식량 확보를 위한 국가 간 분쟁이 예상될 정도로 수산업이 중요해졌지만 수산업계는 걸핏하면 소비 부진과 불신에 시달린다. 지난해 국민생선인 고등어가 억울하게 미세먼지 주범으로 몰렸다. 경남 거제 해역의 오염이 콜레라 파동을 빚었다는 오해까지 샀다. 모두 정부 작품이다.
다행히 5·9 대선 후보들이 해양·수산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차기 정권은 육상자원이 빈약한 우리의 명운이 바다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가 바다를 알고자 하는 것은 단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바다에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해양개발은 정보통신, 우주개발, 생명공학과 함께 제3의 물결을 주도할 4대 핵심산업"이라고 역설했다. 세계 강대국들의 최근 움직임을 봐도 16세기 영국 군인 월터 롤리가 설파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함을 알 수 있다.
차기 정부는 해양 관련 대선공약 중 구체성과 세부 실현방안이 불투명한 부분을 잘 보완해 해양·수산업 육성과 해양강국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기술,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을 해양에 접목해 새로운 성장동력과 먹거리,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해양수산부에 힘을 실어줘야 마땅하다. 해양개척을 국가 어젠다로 삼고, 대통령 직속으로 각 정부부처가 참여해 머리를 맞대는 해양수산특별위원회를 신설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해양·수산인들은 한결같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한다. 바다에 새 희망을 그려야 할 때다. '바다는 땅'이라는 의식 전환이 요구된다. 연근해와 오대양, 극지 등 해양개척을 통해 경제영토를 확장하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