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성의 문화산책] "내 이름은 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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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의 '바라보기'.

지금쯤 부산 중앙공원에는 왕벚나무 꽃잎들이 바람에 떨어지고 없을 것이다. 두려움 없는 자는 소리 없이 그리고, 내면의 동요 없이 스스로의 현 존재로부터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꽃들이 피고 지고 할 무렵, 그 이름 덕분에 생각나는 화가 한 사람이 있다. 부산의 중견화가 김춘자(金春子) 씨다. 그녀의 첫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산지니 출판사)'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최근 세상에 나왔다.

'생명의 붓질' 부산 화가
최근 첫 산문집 큰 울림
사색-감각적 문장 '포옹'

김춘자는 생명과 자연을 주제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부산 화단에서 독특한 작품 영역을 구축하며 자유로운 붓질을 구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화가다. 탄탄한 글솜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책에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찬란한 봄을 일으켜야 할 것 같은 나의 이름이 이른 봄의 편안한 잠에 안주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일까. 여고 시설 화방 아저씨가 '스프링 선(SPRING SON)'이라고 불러주던 기억, 춘자라고 부르기가 본인 스스로 어색해 불러준 애칭이겠지만 이미 그때 '봄의 자식'이란 작위를 받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물이 태동하는 밤을 지키며 자라는 땅을 돌보고 찬양하는 일을 수행하는, 봄이 보낸 자식, 내 이름은 춘자다'('내 이름은 춘자다').

흔히 화가들을 일컬어 심미안의 자연, 그것의 아름다움을 노래 부르는 조형적인 시인이라고 한다. 마치 한 편의 동영상을 보는 듯한 시각적인 그녀의 글이 그림과 합일하는 지점에서 영국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를 떠올린다. 스티브 잡스가 무척 좋아했다는 블레이크는 '인간을 파괴하려면 예술을 파괴하라'고 말했다. 그는 '순수의 예감'에서 이렇게 표현했다.'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네 손바닥 안에서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화가 김춘자 역시 "대지의 숨소리가 내 가슴 가득 느껴졌다. 땅속의 수많은 미생물들이 심해의 돌고래 노랫소리를 듣는 일, 그리고 내가 저 깊은 땅의 심장을 느끼는 일, 땅이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미술 작품이 '내재적인 자아가 지닌 범생명적 일체성과 연계되는 관념의 조합으로서 자연, 식물, 동물의 융합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녀는 이번 산문집에서 예술가로서의 지난한 창작의 과정, 그리고 창작의 아픔과 허무함 같은 것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녀는 신라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8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지난 2009년 봉생문화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바로 곁의 사람들에 대한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부산에 이렇게 사색의 깊이가 융숭해 그것을 치열하게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봄날이 가기 전, 혼자만의 시간을 적절히 배치하고 싶을 때, 김춘자의 산문집을 꺼내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박태성 문화전문기자 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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