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이야기] 18. 부산 화명동 다가구주택+원룸+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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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심미성+안락함… 황금비로 풀어낸 삼원 방정식

부산 '화명동 다가구주택+원룸+가게'는 주거의 전통적 규범들을 해체시키며 또 다른 도시주거의 시대 정신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건축물 전경. 사진=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제공

아파트 생활. 마치 공원 벤치 팔걸이가 사람을 눕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편리'하지만 '편안'하지 못하다. 그 속 사람들의 마음과 감성은 그래서 곧잘 비틀거린다.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따른 '공간의 상품화'인 아파트 생활은 자연과 인간과의 연결성을 상실한 채 '합리적인', 그러나 '부조리한' 무장소성의 공간으로 변화하기를 독촉받고 있다.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심각한 결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 협소주택 내지는 주상복합인듯한 '화명동 다가구주택+원룸+가게'(부산 북구 화명동)를 지은 3인의 건축주들은 무척 행복하다. 정성스레 가꾸어 놓은 꽃가지와 자기 존재를 뽐내는 식물들, 베란다 흔들의자, 덱 파라솔…. 꼭 비싼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여기서는 자연과 인간들 간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자고 의기투합한 30대 중반 3명의 젊은 선후배들은 오래동안 '배려의 건축 언어'를 구사해온 건축가 강대화 대표(건축사사무소 토탈)를 찾았다. 땅값에 건축비를 합쳐 1인당 대략 2억~3억 원 정도를 투자한 것이다. 강 대표는 건축주들과의 끈질긴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관계망을 고려한 아름다운 거미집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화답했다.

3명 의기투합해 2억~3억씩 투자
복층 주택 2채·원룸 2개에 점포도

중앙 공용공간 둬 4채 독립성 유지
프라이버시와 유대감 절묘한 조화

꾸불꾸불한 실내 계단
강 대표는 내 집 마련뿐 아니라, 임대수익을 바라는 나머지 한 사람의 몫에 대해서도 살폈다. 2층의 원룸 두 채는 한 사람의 몫이며, 3~4층은 나머지 두 사람의 몫이다. 3~4층은 복층 주택 두 채를 짓는 게 이 집의 대체적인 프로그램이다. 아래 1층에 있는 카페와 의상실 역시 이들 세 건축주의 공동 몫으로 구성돼 있다. 협소주택과 주상복합식 구조를 결합한 꽤 복잡한 방정식이다.

어느 곳 하나 직각으로 만나지 않고 날카로운 예각 모양의 땅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건축자금 대출을 제공한 은행에서 과연 '물건'이 되는 건가에 대해 많은 물음표를 던질 정도였다. 그런데 건축물 완공 후 땅과 건축물의 부가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강 대표는 최소한의 반듯한 '채' 나누기를 위해 볼륨중앙으로 삼각형의 공간을 개입시켜 공용 공간화했다. 그리고 이곳에 통로를 만들어 4채의 출입은 독립적으로 해결한다. 3층 지붕이 되는 4층의 작은 옥상공간은 마당(덱)이 되며, 남는 공간은 다락을 만들어 활용했다. 잉여공간들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협소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감을 연출했다.
3층 거실 전경
협소주택에서 필연적인 복층 구조와 실내계단은 아파트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로망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사는 4살짜리 딸은 다락방에 자기 방을 꾸며주니 벽에 뽀뽀하며 너무 좋아한다. 건축주 3인 중 리더 격인 이경민 씨는 "딸아이가 외출이라도 하면 빨리 집에 가자고 조릅니다. 하늘이 열린 공간, 햇빛과 바람을 만나는 공간이 있고, 최후의 안식처 같은 다락에다가, 발코니까지, 스쳐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도시의 생경한 낭만 아니겠어요"라며 대만족이다.

꿈틀거리는 계단 동선은 다양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적절한 '열림과 막힘'을 배치함으로써 바깥과의 교감과 프라이버시를 유지했다. 자기 공간을 갖고 싶다는 본능의 절묘한 배치. 아파트에 거주하면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바비큐 파티도 한다. '작은 마을'이 저절로 마련됐다. 강 대표는 "30대 젊은이들의 경제적, 공간적인 감각에 깜짝 놀랐다. 젊은 층조차도 아파트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며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층고를 높이기 위해 노출 콘크리크 기법을 도입한 1층 카페.
'화명동 다가구주택+원룸+가게'는 최근 아파트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파트를 벗어난다는 것은 비싼 땅값에서부터 다양한 정보 취득, 변화무쌍한 가족구성, 복잡한 공정까지 수반되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30대 젊은이 3명은 '함께 하기'를 통해 각자의 꿈을 당당히 이뤄냈다.

건축의 본질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남을 나타나게 해주는 미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강 대표가 더 괜찮은 건축 언어를 쓴 게 있다면, 오래동안 '나'란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건축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박태성 문화전문기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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