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준 칼럼] 큰 정부 vs 작은 정부
/유명준 논설위원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어느새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의 지지율은 요동치고 선거전은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짧은 선거 기간에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기에 TV토론만 한 게 없지만 지금까지 펼쳐진 TV토론은 유치한 말싸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잘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 분명히 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놓고 후보들이 벌이는 공방이다.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려 경기 활성화와 고용 증대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이 문 후보의 공약이다. 이에 대해 다른 후보들은 문 후보의 공약은 재원 조달 대책이 크게 미흡할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은 기본적으로 민간과 기업의 몫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방
'정부 주도'인가 '민간 자율'인가
경제 정책에 대한 근본적 질문
이념 지향 따른 선택 가능해져
증세·복지 축소 동반 명심해야
남은 토론 주의 깊게 살피길
일자리 공약을 둘러싼 이 같은 공방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둘러싼 근본적이고도 뿌리 깊은 경제학 논쟁의 한 단면이 우리 정치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바로 '큰 정부'와 '작은 정부' 논쟁이다.
'작은 정부론'은 경제에 있어 시장과 민간의 역할이 최우선임을 주장한다. 경제 활동은 가능한 한 민간에 맡겨야 하며, 정부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큰 정부론'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김에 따라 초래된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해소 혹은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은 정부론은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고전경제학을 기반으로 한다. 이후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대두된 케인스의 이론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뉴딜정책은 큰 정부론의 출발점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나 영국의 대처리즘으로 다시 대두된 작은 정부론은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는 작은 정부, 사회적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는 큰 정부를 추구한다.
현재 주요 5개 정당 후보의 공약을 분석해 보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큰 정부론과 작은 정부론으로 딱 떨어지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복지 부문에서는 대부분 확대 정책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자리 공약을 포함한 경제 정책의 큰 틀을 놓고 평가해 볼 때 후보 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앞세우는 문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큰 정부' 쪽이고, 민간과 기업의 주도 원칙을 강조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작은 정부' 쪽이라고 볼 수 있다.
큰 정부론과 작은 정부론은 과거에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미래에 어떻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를 따지는 선택의 문제다. 과거 대선은 대부분 민주화 세력 대 산업화 세력의 대결 구도나 영남 대 호남의 지역 구도로 치러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도 '적폐 세력' 논란이 그 연장선에 있지만 과거에 비해 그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신 경제 정책의 기본 원칙을 둘러싼 대립 구도가 생기고, 그에 따라 유권자도 정책과 철학, 이념적 지향에 따라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큰 정부를 주장하든 작은 정부를 주장하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큰 정부는 증세를 전제로 한다. 재정 지출을 통해 경제와 복지 분야에서 정부 역할을 확대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작은 정부는 복지 축소를 감수해야 한다. 감세를 통해 재정 지출을 줄이면 종전의 복지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쓰는 것만 큰 정부가 되고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작은 정부가 되기를 원할 수 없다. 만약 그런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큰일이다. 공약을 지킨다면 국가 재정은 파산에 이를 수밖에 없고,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 밤 경제 분야를 주제로 한 다섯 번째 대선후보 TV토론이 열린다. 내달 2일 열리는 마지막 토론은 사회 분야가 주제다. 검증을 핑계로 한 네거티브나 말꼬리잡기가 아닌 큰 정부론과 작은 정부론을 두고 본격적으로 토론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도 정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면서 토론을 시청하기를 권한다. joony@busan.com